‘호러(Horror)’. 윌라드 대위(마틴 쉰)의 칼에 난자 당하면서 커츠 대령(말론 브랜도)은 잦아드는 숨소리로 이 말을 두 번 반복하고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지옥의 묵시록’은 그 공포에 대한 음습하고 날카로운 잠언이다.전장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행위는 ‘공포’의산물이다. 바그너의 ‘발퀴레’를 요란하게 틀어놓고 적을 죽이고, 서핑을 즐기기 위해마을을 네이팜탄으로 초토화하는 킬 고어(로버트 듀발)의 광기도, 작은 배를 수색하다 베트남 양민을 난사하는 기관총 사수 클린(로렌스 피쉬번)의두려움도 본질은 같다. 한쪽은 비열함, 한쪽은 양심이라고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병사들은 플레이 걸들의 초라한 위문공연에도 미친 듯이 열광한다. 윌라드 일행5명은 기름 두 드럼을 주고 플레이 걸들과 허겁지겁 섹스를 한다.
이 무모한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면 죽은 시체로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병사의 공포를 잊으려는 발버둥이다.
그것이 광기든, 자학이든, 가학이든, 쾌락이든 공포는 그 자체로 인간을 파멸시키고 그런 전장이야말로 지옥이다.
부대를 버리고 캄보디아 국경 근처 밀림으로 들어가 원주민들을 이끌고 야수적인 살상을 하는 커츠 대령의 ‘광기’와그를 살아있는 소를 칼로 내리쳐 도살하듯 죽이는 윌라드의 ‘행동’과 그것을 명령한 미국의 ‘이성’사이에어떤 차이가 존재할까.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Reduxㆍ라틴어로 ‘회귀’란 뜻)에는 명분도, 그 명분을 정당화하는 영웅도 존재하지않는다.
베트남을 지옥으로 만든 것은 미국이고, 윌라드 일행은 긴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자신과 병사들, 커츠에게서 그것을 확인한다.
‘플래툰’의야비한 번즈나 비장하고 휴머니즘 가득한 일리아드는 없다. 미군과 베트콩이 서로 전투하는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것들이야말로 어떤 전복을 시도하든 오락일 뿐이다.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는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1979년 판(한국에서는 1988년에야 개봉)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네가필름으로49분을 추가해 3시간 16분짜리로 다시 편집한 것이다.
5월 22년 만에 다시 베트남 전쟁 이야기를 들고 칸영화제를 찾은 코폴라 감독은 이렇게말했다. “다른 영화가 아니다. 엔딩도 같다. 그 엔딩을 깊고 넓게 했을 뿐이다.”
‘호러’ 와 프랑스인 농장 주인의 절규를 통해 드러난 미국의 무모한 패권주의. 베트남 전쟁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것을 다룬영화도 더 이상 만들 필요가 없어졌지만 22년 전의 ‘지옥의 묵시록’ 은 여전히 과거가아닌 현재이다.
미국은 또 다른 패권주의를 꿈꾸고, 전쟁에 대한 공포는 늘 우리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31일 개봉.
■복원된 49분은?-플레이 걸들과의 정사 서핑보드 훔치기등 추가
1979년 재정압박과 흥행을 위한 상영시간(145분)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장면이 추가된 곳은 네 부분.
먼저 윌라드 대위 일행이 출발하는 장면에서 킬 고어 대령이 애지중지하는 서핑보드를 훔쳐서는 강가에 숨는다.
그 위를헬기로 돌며 “돌려 달라”고 하는 킬 고어. 이것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코믹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이라면, 마지막장면에 추가한 윌라드와 커츠의 철학적인 대화는 그것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졌는가를 보여준다.
플레이 걸들과 윌라드 일행의 섹스 장면도 추가됐다. 이번에 가장 긴 시간(20여분)복원된 장면은 프랑스 농장 에피소드.
록산느라는 여인으로 나와 윌라드와 하룻밤 정사를 나눈 프랑스 배우 오로 클레망이 올해 칸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될정도로 1979년에는 몽땅 잘려나갔다.
농장주는 윌라드 일행에게 적의에 가득찬 태도로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을 비난한다. 같은 이방인이지만 자신들은 이곳이 삶의 터전이고, 미국은 그것을 파괴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 장면의 추가로 코폴라 감독은 프랑스인들로부터 비판을받았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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