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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불합리한 극단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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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불합리한 극단을 경계한다

입력
2001.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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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 불렀다. 학살과 전쟁과 같은 사회적 모순과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은 세기가 20세기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20세기가 인류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극단의 시대에 사람들은 적과 동지로 나누어져 생사를 건 투쟁을 벌였고, 흑백사상과 냉전적 사고가 지배하였다. 다양한 입장과 생각들 사이의 합리적 토론이 발붙일 자리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 신문과 TV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 나라가 지금 극단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권과 사회단체의 일각에서는 이미 청산되었어야 할 20세기의 냉전적 사고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사회운동 단체의 일부에서는 이미 그 오류가 검증된 낡은 실천방식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 이 냉전적 사고와 구시대적 실천방식이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8·15 통일대축전 북한 방문 대표단 일부가 보여준 행동은 낡은 실천방식에 젖은 사람들의 분별없는 처신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그 방북단 일행이 귀국하는 공황에서 한총련 여학생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흔드는 재향군인회 회원들의 행동은 냉전적 사고의 결정판이라 할만하다.

도대체 이러한 행동들이 민족통일과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그들은 다수 국민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집단도 아니고 다수 국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민족과 국익을 운운하면서 극단적 행동을 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야당의 정책위 의장이 현 정부의 정책을 사회주의적이라고 비난한 것은 코미디에 가까운 극단적 행동이다.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여 구조조정을 한다던가 사회복지 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20세기 중엽이래 선진자본주의의 공통적 현상이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체제에서는 국가가 경제를 강력하게 통제했었다. 그렇다면 그 동안 한국은 사회주의 국가였단 말인가?

이 코미디는, 1930년대 세계대공황 때 자본주의를 구제하기 위해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주장했던 경제학자 케인스를 보고 공산주의자라고 몰아 부친 당시 극우 인사들의 극단적 행동의 한국판이다. 경제원론 책을 한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케인스가 보수주의자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그 동안의 한국경제 개혁과 관련해서 보자면,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잘 해결된다고 보는 시장만능주의, 민간의 경제활동에 일일이 규제해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정부만능주의, 이 두 극단이 교차하였다. 그 결과 큰 혼선이 초래되어 경제가 엉망이 되어 버렸지 않았던가?

남북통일 문제와 관련해 보자면, 한편에서 민족은 하나라며 자나깨나 통일만 주장하는 통일지상주의, 다른 한편에서 북한포용 통일 주장을 빨갱이라고 몰아 부치는 수구적 강경론이 교차해왔다. 이러한 감상적 통일지상주의와 냉전적 사고가 민족통일 대업에 재를 뿌리고 있지 않는가?

시장기능과 정부 개입을 지혜롭게 결합해야만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기약할 수 있다는 점, 통일은 민족의 장기적 이익의 관점에서 고도로 신중하고 지혜롭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직시할 때, 이런 불합리한 극단적 사고들은 참으로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이와 같은 극단적 생각과 행동이 정치와 경제를 좌우한다면 나라의 장래는 암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민족의 밝은 내일을 위해서는 불합리한 양극단이 배제된 생산적 토론의 장이 하루빨리 열려야 한다. 진보든 보수든, 이성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야 한다.

김 형 기(경북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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