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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폴리티키의 '곰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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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폴리티키의 '곰 남자'

입력
2001.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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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문학’ 가을호에 독일 작가 마티아스 폴리티키의 ‘곰 남자 - 코펜하겐/파리/ 서울, 1989년 9월/ 1999년 9월/ 2009년 9월’이라는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작품 전체가 아니라 서울을 배경으로 삼은 부분만 실렸다.번역자인 한국외대 장은수 교수의 해설에 따르면 ‘곰남자’는 독일인 주인공이 코펜하겐과 파리, 서울 세 도시를 여행하는 동안 이방인으로서 겪는 에피소드들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폴리티키는 1999년에 한국을 방문해서 자신의 소설과 시를 소개하는 낭독회를 가진 바 있는데, ‘곰남자’ 속에 묘사된 서울 풍경은 그 때의 체험에 바탕을 둔 듯하다.

소설 속에서 화자는 한국인 술친구들로부터 폭탄주 마시는 법을 배우고 서울의(퇴폐)이발소 풍경을 전해 듣고 노래방에서 악을 쓴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이미지는 부채의 아름다움, 사물놀이의 위대함, 김치와 숭늉차,미니스커트를 입은 미녀들이 안내해 주는 주차장, 산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방송을 타고 나오고 디지털 뻐꾸기가 정차역을 알려주는 지하철 같은 것이다.취한 화자가 서울의 밤거리에서 곰의 탈을 쓴 남자를 만나는 것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작가가 한국의 웅녀 신화를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서울과 서울 사람들을묘사하며 곰 이미지를 불러낸 것이 신기하다.

역자의 해설에 따르면 주인공은 코펜하겐과 파리에서도 짐승의 탈을 쓴 남자를 만난다고 한다. 소설 전체가번역되지 않아서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다소 모호하다. ‘동서문학’이 이 작품을 전재(全載)했으면더 좋았을 것이다.

‘곰 남자’는 한국이문학의 공간에서도 ‘극동의 은자(隱者)’가 아니라 지구촌의 한 부분이 돼가고 있다는 한 징표로 읽힌다.

그리고 문학 속의 한국 이미지도 많이 변했다는것을 실감하게 한다. 펄 벅의 ‘살아있는 갈대’나 ‘새해’ 같은 작품에서 한국은 오로지 수난의 땅이었다.

영국 작가 데이비드 로지가 1980년대말에 펴낸 장편소설 ‘아주 작은 세상’ 에서는 한 젊은 문학 연구자가 자신이 한 눈에 반한 여성과 재회하기 위해 전 세계를 헤집고 다니는데, 그는그 사랑의 여로에서 부산에도 잠깐 들른다.

그러나 그 도시에 대한 세부 묘사는 없다. ‘곰 남자’ 에서만이 아니라 우리는 앞으로 점점 더 자주문학작품 속에서 타자의 눈에 비친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와 타자 사이의 담장이 점점 낮아지는 것, 그것이 세계화의 한 의미일것이다.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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