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쉽다’를 나타내는 우리말 표현에 ‘누워서 떡먹기’와 ‘땅 짚고 헤엄치기’가 있다. 실제로 누워서떡먹기는 언뜻 드는 생각과는 달리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고물이 있는 떡은 그 떡고물이 눈에 떨어질 수도 있고, 물 없이 떡만 먹다가는 목이 매이는 수도 있다. 그러나 떡은 상머리에 앉아 잘 익은 무김치쪽이나 조청을 곁들여 먹는 게 제격이다.
이와는 달리 ‘땅짚고 헤엄치기’는정말 얼마나 쉬운가. 둔덕으로 버드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눈이 시리도록 맑고 투명한 개울물 밑바닥에는 하얀 모래가 깔려 있다.
피라미와 모래무지, 송사리와 버들붕어가 종아리와 발등을 간지럽히는 얕은 물에서 두 손바닥으로 모래 감촉을 즐기고 두발로 번갈아 물장구를치다 보면 저 멀리 산등성이 뭉게구름이 솜을 타놓은듯 보드랍고 하얗게 부풀어 오른다.
그 때가 예닐곱살 때 쯤이었을까. 헤엄치러 갈 때는 으레 동네 형들과 함께 가기일쑤인데, 짓궂은 형들은 우리 조무래기들이 땅 짚고 헤엄치면서 마냥 좋아하는 걸 두고 보지 못한다. 그날이 내 차례였나 보다.
동네 형 가운데하나가 느닷없이 내 쪽으로 와서 나를 번쩍 치켜들더니 버드나무 그늘이 있는 깊은 물쪽으로 사정없이 내던져버리는 게 아닌가. 손에도 발에도 짚히는게 아무 것도 없이 끝없이 깊은 죽음의 수렁으로 빨려드는 그 두려움이라니.
입으로, 코로 한없이 흘러들어 배를 채우고 허파까지 아리게 하는 물.손발을 허우적대고 비명을 지를수록 더 빨리, 더 크고 무섭게 다가서는 죽음의 공포, 어떻게 어떻게 해서 물가 쪽으로 기어나와 살았다 싶으면 또누군가 등을 떠밀거나 다리를 걷어차 깊은 곳으로 던져버렸다.
동네 형들이 나를 죽이러 들면 친형들이라도 나서서 구해주는 게 마땅한 일이련만그 친형들마저 옆에서 구경하고 웃고만 있을 뿐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기미가 털끝만큼도 없다. 그 버림받은 느낌이라니. 잔혹함이 허옇게 이를 드러내며 웃는 가운데 속절없이 죽음에 몸을 맡길 수 밖에 없는 데서 생기는 원망이라니.
그러나 이것은 물고문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서 헤엄치기를 배웠다. 땅짚고 헤엄치기를 즐기던 우리 시대를 마감하고 거칠고 험한 파도로 에워싸인 삶의 바다로 헤어나갈 준비를 적들이 아니라 한울타리 안의 형들이 시켜주었다.
윤구병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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