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평양축전에서 남측 대표단 몇 사람이 돌출행동을 했다고 하여 특정 정치세력은 남한내 이념갈등,국민통합 붕괴 등 적절치 않은 단어들을 동원하며 우리 사회에 냉전적 허위의식을 주입, 확대 재생산하려 하고 있다.문제의 핵심은 이러저러한 행동이‘찬양ㆍ고무냐, 아니냐’에 있지 않고, 그것이 우리 국가안보에 미칠 영향에 있을 것이다.
설사 낭만주의적 주사파 또는 ‘민족민주민중주의자들’이북한을 찬양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해도 그것에 현혹되고 오도될 남한내 시민이 얼마나 될까. 오늘날 누가 공산주의를 두려워하랴.
원칙이나 약속을 어긴 인사들은 일상적인 법 절차를 밟거나 꾸짖음을 받도록 하면 된다. 그들의 단순한 시대착오적 행동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며 ‘남남갈등’을 선동하는것이 오히려 우리의 국가안보에 위해를 가하는 위험한 행동이다.
통일부 장관 해임안도 민족문제를 정쟁화하여 정치적 이득을 얻어보려는 계산처럼 보인다. 물론, 평양 해프닝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예민한 사안일 수 있다. 그러나 통일부는 정치를 하는 곳이 아니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통일의 민족적 과업을 수행하고있는 공공재적 국가기관이다. 3년도 채 안 되는 기간동안 14차례나 장관해임안을 제출하고, 이를 둘러싸고 합종연횡하는 정치를 보면 웃음밖에 안나온다.
정치인들은 민족문제에 관해서 만이라도 국민들에게 믿음직하고 진지한 정치를 제공해야 할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평양축전이 악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남북관계의 진전에 대한 북한의 비협조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남한이그 동안 지속해온 선도적 협조와 양보를 북한이 보상하지 않을 경우, ‘건설적 자극’ 또는 ‘선의의 응징’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많은 국제정치학자들도‘보복ㆍ보상 전략’이 장기적인 게임에서 협력을 유도할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단, 남한은 ‘과잉보복’이 아닌 ‘배반에 상응하는 보복의 양’을적절히 조절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일부 인사에 대한 원칙적 처리 등과 같은 북한에 대한 선의의 응징은 그것이 선의라해도 남북관계를 파탄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는 조금만 길게 보면 기우에 불과하다. 남북관계는 때로는 일시적 휴지기를 각오해야 장기적,안정적 관계개선이 기대될 수 있는 것이다.
냉전세력이 남북관계의 잠정적 중단을 ‘대북정책의 실패’라고 규정하고 이를 정략적으로 악용할 수도 있지만, 대국민 설득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남북관계의 작전상 후퇴’ 전략은 의연하고 정직한 국가적 리더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 답방등 소위 가시적 성과를 내는 문제도 이러한 자세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컨대, 정부는 북한에 대해 항상 대화와 협력의 문을 열어놓고 있음을 알리는 한편, 민족문제를 근시안적으로 추진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여러가지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정권이 남북관계의 진전을 수확토록 하기 위해 ‘씨를 뿌리는마음’으로 시계를 넓고 길게 가지겠다는 초심을 재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남한 정부의 전략적 유연성은 결국 북한을 건설적으로 자극하여 그들의 성의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이는 또한 국민적 지지와 결합하여 현 정부임기 내에 남북관계의 획기적 돌파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박건영 (가톨릭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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