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겨울이 시작될 무렵, 우연히 소록도병원에 성인용 기저귀가 많이 필요하지만 필요한 만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변호사협회 신문편집에 관여하면서 신문에 게재할 광고이야기를 하다가 ‘소록도에 기저귀 보내기’ 광고를 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당시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고,그 광고를 계기로 알고 지내는 가까운 변호사 몇 명에게 권해보자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소록도에서 들려 온 소식에 의하면 의외로 많은 분들이 돈이나 물건으로 도움을 주셨다는 것이었다. 보내 온 기부자 명단을 살펴 보니 생각지도 않게 현직 판ㆍ검사들 중에서도 광고를 접하고 기부금을 보낸 분들이있었다. 정말 고마운 마음이었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많이 부끄러워 했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 휴가를 맞아 작은 딸과 함께 찾아 간 소록도에서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매월 일정 금액을 계속해서 보내주시는 분이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이제는 내 교만함에 무릎 꿇고 반성을 해도 모자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우리가 서로 높은 담을 쌓은 채,주위의 아픔을 망각하고 산다고 단정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고 있는 메마르고 숨막히는 갈등과 대립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큰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갈등과 대립이 모든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말없이, 조용히, 따뜻하게 이웃을 보듬고 사는 보통사람들을 알아 볼 틈이 없어져 버린다.
이들은 말없는 사람들이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떠벌리고 다니지도 않고, 자신이 무슨 일을 했다고 떠들지도 않기 때문에 때로는 그존재를 잊어버리게 되는 모양이다.
요즈음은가까운 몇몇 사람들이 모여도,그리고 아주 어린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도 커다란 주제를 내놓지 않으면 대화에 낄 수가 없다. 어디서든 적어도 보수나 진보, 개혁 정도의 문제는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경제에 관하여서도 코스닥이나 구조조정 정도의 이야기는 할줄 알아야 한다.
결론이 너무나 명확한(그러나, 절대로 서로 타협하지 않는) 주장들이 정의와 합법성을 내세우며 워낙 날뛰다 보니 조그마한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를 진부하게 드러내놓고 할 자리가 없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같이 나누자고 하기에는 너무 시시한 것 같아 대화를 꺼내기가 어렵다.
신문과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다툼의 대부분이 ‘그사람들’을 위하는 일은 내가 하겠노라고 서로 나서는 일이라면 참 좋겠다.‘작은 일’만 생각하고, ‘작은 일’만좇아 다니며 살아도 24시간이 모자라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 세상이 ‘커다란 일’ 때문에 당장 끝나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떠들어 겁을 주는일은 제발 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그 대신 정말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조그마한 일들에 관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줄어든 공간을 채웠으면 좋겠다. 그러면,우리는 조금 덜 불안하고, 덜 외로울텐데.
이번 여름 소록도로의 휴가 여행은 참 소중한 것을 가르쳐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어 버릴 것처럼 큰소리 치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전혀 흔들림없이 자신들의 자리를 의연히 지키고 있고, 작은 힘이나마 이웃을 돕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를 하나로 묶어 놓고 있는 것이다. 큰 목소리에 현혹되어 당장 세상이 끝날 것처럼 비난하고, 절망에 빠지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겠다.
황덕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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