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이 사는 나라 까자흐스딴“우리의 기억 속에는 유럽과 아시아만 존재해 왔을뿐‘유라시아’는 없었다. 우리는 소련과 철의 장막만 알았지 그 안에가두어진 ‘비단길’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살아왔다.”
이 책을 쓴 저자 권영훈(46)씨는 한국인 최초의 러시아 유학생이다. 이제는전설이 된 구 소련의 고려인 가수 빅토르 최의 록그룹이 90년6월 모스크바 루즈니키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태양이라는이름의 별’을 공연하는 현장에 있었던 아마 유일한 한국인, 7년여 유학생활 후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받고, 지금은 카자흐스탄 국립대학 동방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1937년 스탈린의 억압적 소수민족 정책에 의해 우수리, 연해주 등에 있던18만 여명의 고려인이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몇몇 나라로 강제 이주됐다.
현재 카자흐스탄에는 10만여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99년 통계에의하면 한국은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이곳에 투자를 많이 한 나라다.
책은 권씨가 카자흐스탄에 살면서 보고 겪은 체험에 바탕한 것이다. 한국인 최초의현지 생활 체험기라 할 수 있다.
유라시아와 관련된 책들로 고려인들의 유민사, 고려인사회와 관련된 학술서, 이들을 주제로 한 소설 영화 등은 많았지만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들의 삶 그 자체를 다룬 책은 없었다. 권씨의 책은 그들의 현재의 삶을 그대로 기록했다.
도시가 없는 유목민의 대지에 러시아인들이 문화를 건설한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아티를권씨는 ‘사생아의 도시’라 부른다.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유목민과 농경민,자연과 인공, 회교와 기독교, 카자흐 인과 러시아 인이 공존하는 이 도시의 묘한 매력을 지칭한 표현이다.
카자흐 인들은 그들의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이동식 천막가옥 ‘유르타’를 꼽는다. 스스로를 늑대의 자손으로 생각하는 이들유목민의 삶과, 우리의 단군신화에서 나타나듯 곰을 조상으로 여기는 농경민족의 삶이 비교된다.
131개 민족이 공존함으로써 세계에 유례 없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카자흐스탄이기도 하다. 헌팅턴 식의 ‘문명의 충돌’은 이곳에 없어 보인다.
그 문화를 권씨는 미스 카자흐스탄 선발대회, 당초 술이 없던 나라에 퍼져 카자흐 영혼의 파괴자로 불린 보드카, 전래 유목민들의 시와 노래 등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고려인 이주의 역사화 현재 생활상에 대한 기록도 물론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미국, 미국인’ ‘일본, 일본인’ 하는 책들만 읽을 것인가. 소외되고 억압받았던 실크로드 나라 약소 민족들의 삶, 그들의 요구에 귀기울이는 것이 21세기의화두”라고 권씨는 자료의 부족 속에서도 힘들게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 말했다.
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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