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조만간 남해안 어장과 양식장을 붉은 죽음의 띠가 모조리 집어 삼킬 겁니다.”22일 오전 경남 통영시 사량도 양지리 바닷가. 전날 이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가두리 양식장 4㏊에서 어류 17만마리가 적조로 떼죽음을 당했다.
어민 5,6명은 하얀 배를 드러낸 채 물 위를 떠다니는 돌돔과 농어를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
적조가 청정 해역인 남해를 ‘홍해(紅海)’로 만들더니 급기야 양식장까지 덮쳐 여기저기서 물고기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직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양식장들도 바로 코 앞까지 다가온 붉은 띠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러나 황토를 뿌리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재해 당국과 어민들은 해수온도가 내려가 자연소멸 되기만을 기대하는 형편이다.
황금어장으로 유명한 전남 여수시 남면 화태도와 송도 일대 해역에는 쪽빛 물결대신 붉은 적조 띠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대풍어의 꿈을 키우던 인근 우럭 전복 등 양식어장에도 300~400㎙ 앞까지 적조가 밀려와 어민들이 황토를뿌리고 어류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느라 사투를 벌였다.
박양식(34) 화태어촌계장은 “자식 같은 물고기를 살리기 위해 며칠째 양식장에서 밤을 새웠다”며 “마을 어민 모두가 적조와의 전쟁을 치르느라 고깃배는 띄울 생각조차 못하는 상황”이라고말했다.
어민들은 태풍 ‘파북’의영향으로 바닷물이 뒤집혀 적조가 다소 약해지기를 기대했지만 남해안 외곽만 살짝 때리고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오히려 적조 띠가 내해쪽으로 밀리면서 양식장이 잇따라 피해를 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비라도 내리면 육상의 오염물질이 곧바로 쏟아져 들어와 적조가 더욱맹위를 떨칠 것이 뻔해 이래저래 시름이 커지고 있다.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주민 정덕봉(53)씨는 “적조소멸을 기대했던 태풍이 오히려 적조의 기세를 살려주는 꼴이 돼버렸다”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1995년 발생했던 적조 대재앙이 재연돼 남해안 어장들이 쑥밭이 될 것”이라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여수시와 어민들은 이 일대에 벌써 황토 9,000여톤을 쏟아 부었지만 적조의 기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황토가 청정수역에 무더기로 뿌려지면서 어장의 ‘2차 피해’도 우려된다.
김현철(42) 송도어촌계장은 “살포된 황토는 물고기의 아가미를 막아버리기 때문에 또 다른 어류 폐사의 원인이 된다”며 “그렇다고 현 상황에서 황토살포 이외에 뚜렷한 방제방법도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혀를 찼다.
안경호기자
khan@hk.co.kr
■적조.녹조
적조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과잉 번식,바닷물이 검붉게 변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적조를 일으키는 생물은 43종으로 이중 유해성 적조생물은 편모조류인 코클로디니움(Cochlodinium) 등 3종.
내륙 호수 등에서 발생하는 녹조는 발생 메커니즘이 적조와 유사하지만 유발 생물이 이끼류인 조류와 남조류여서 녹색을 띠게 된다.
적조와 녹조는 ▦영양염류 증가 ▦수온의 상승 ▦상ㆍ하층수의 유리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정확한 발생이나 확산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두 현상 모두 산소를 급격히 감소시키고 유해물질을 발생시켜 부근 수역의 어패류는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적ㆍ녹조는 조류 농도 등에 따라 주의보_경보_대발생등 3단계의 예보가 발령된다.
남해안의 거의 전역이 적조로 뒤덮여 바다가 황갈색으로 변한 가운데 22일 전남 여수시 남면 묘두도 앞바다에서 붉은 띠가 양식장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 방제선이 황토를 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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