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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해수욕장은 꼴불견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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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해수욕장은 꼴불견 천국

입력
2001.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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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인파가 몰린 2일 대천 해수욕장. 이날 하루만 4명의 피서객이 물에 빠져 숨졌다. 이중 세 명이 입욕금지시간인 이른 새벽에 수영을 하다 변을 당했고, 두명은 술에 취한 상태였다. 난장판 피서문화가 비극으로 치달은 경우다.자정부터 새벽 5시 사이는 해변의 ‘사각(死角) 시간대’. 저녁부터 마시기 시작해 얼근히 취기가 오른 피서객들이 첨벙첨벙 바다로 뛰어들기 시작한다.

구명조끼를 착용한 단속 의경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달려오지만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 취객 중 몇 명은 수십미터 앞 바다까지 헤엄쳐 나가는 경우도 있다.

올 봄부터 대천해수욕장에서 야간 경비를 하고 있는 김모(21) 의경은 “며칠 전 밤에는 부부싸움을 한 뒤 아이를 안고 바다에 뛰어 들어간 주부를 구출하느라 혼이 났다”며 “놀러 왔으면 제발 놀고만 갔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이른바 ‘헌팅’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즉석 파트너 구하기는 그 대상이 중학생에까지 내려갔다. 같은 반 친구 4명과 무창포 해수욕장에서 2박 중인 경기 평택의 신모(14) 양은 “이틀동안 만난 남자들이 몇 십 명은 될 것”이라며 상대 남성의 연령층을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라고 밝혔다.

전날 밤에는 합석을 청하는 고교생들과 해변에서 술자리를 갖다 바로 옆 나이트클럽으로 옮겨 새벽 3시까지 몸을 흔들었다.

밝은 대낮이라고 해서 ‘정상적인’ 풍경만 연출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단위로 놀러온 피서객들은 도처에서 행해지는 남녀 커플의 진한 애정표현에 도무지 눈 둘 곳이 없다는 불평이다.

갓 결혼한 딸과 사위를 데리고 최근 경북 후포해수욕장을 다녀온 정주인(54) 씨는 “무슨 여관방도 아니고… 다 벗은 남녀가 뒹구는데 딸 보기 민망해 혼났다”고 고개를 저었다.

대천관광협회 채춘병(蔡春秉) 사무국장은 “최근 가족단위 피서객들의 비율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라며 “꼴불견 애정행각이 한 원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성적 호기심에 동한 인근 청소년들이 ‘엿보기’를 목적으로 해변가에 몰려드는 것도 큰 문제. 대천 해수욕장에서 만난 중학생 연배의 청소년 3명은 “거의 매일 바닷가에 나온다”며 ‘어디어디에 가면 재미있는 장면이 많다’고 안내까지 했다.

올해 해변가 풍속에서 달라진 점 중의 하나는 오토바이 폭주족들이 점령하던 해안가 도로를 속칭 ‘미니카’라는 신종 기구가 대체했다는 것.

바퀴 네 개 달린 오토바이처럼 생긴 이 기구는 당초 ‘농업용 기계’로 나온 것을 개조한 것으로 별도 면허 없이 운전이 가능하다.

때문에 저녁이면 ‘광란의 질주’가 이곳 저곳에서 벌어지고 이와 관련한 사고가 대천에서만 하루 2~3건씩 발생하고 있다.

8월 중순에는 술취한 피서객이 미니카를 운전, 식당 유리창을 뚫고 들어가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상가 주민들과 피서객들이 모두 불안해 하고 있지만 경찰측은 “단속근거가 없다”며 방관하고 있다.

강릉=이민주기자

mjlee@hk.co.kr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한국인은 밖에서도 새는 바가지?

15일 오전 9시께 홍콩의 꽤 알려진 호텔인 인터내셔널 하우스내 레스토랑. 조용하던 식당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가족들로 보이는 한국인 피서객 5~6명이 갑자기 김치 젖갈 등 밑반찬을 올려놓고 식사를 하는 바람에 옆에 있던 서양인들이 “냄새가 나서 아침식사를 못하겠다”며 호텔측에 항의했기 때문.

이달 초 스위스 관광도시 루체른의 한 캠핑장. 20~30대 한국인 배낭족 10여명이 ‘오후 10시가 되면 잠자리에 든다’는 캠핑장 규정을 무시한 채 팩소주와 양주로 술잔을 돌렸다.

취기가 돌자 목소리가 높아졌고, 급기야 ‘합창’으로 이어졌다. 이 술판은 다음날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해외로 피서를 떠난 한국인의 ‘추태 시리즈’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개선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태국 치앙마이에 사는 정문지(15)양은 최근 e-메일로 그 실상의 일단을 전해왔다. “아버지가 하루는 골프를 치고 온 뒤 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말했어요.

라운딩 도중 가까운 곳에서 ‘곧 갈게’라는 한국말이 들렸데요. 반가운 마음에 뒤를 돌아봤는데 나무에 ‘볼일’을 보고 있던 거에요.

아버지는 태국 골프장에 가면 ‘000, 0월0일에 왔다 감’ 이라는 글이 나무에 새겨져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했어요.”

지난달 하순 파리 근교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 버스에서 잠깐 내린 한국인 10여명이 한꺼번에 화장실로 달려가 세면대에 철철 넘치도록 물을 틀고 일부가 머리를 감았다.

손을 씻으려는 현지인과 외국인 관광객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10분이 넘게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화장실 바로 옆에 15프랑(약 1,800원)만 내면 이용할 수 있는 샤워장이 있었지만 이들은 알량한 여행 경비를 아끼기 위해 집단 추태를 부렸다.

국내 관광 가이드들은 “어느 나라 관광객이든 일탈자는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기본적 에티켓마저도 무시한 돌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진각 기자

kimjg@hk.co.kr

■피서문화 개선책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후진적 피서문화 개선책은 대개 두 가지다. 첫째는 지속적 캠페인으로 휴가에 대한 국민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장기 처방이고, 강도 높은 단속과 계도라는 대증 요법이 두번째다.

한국관광연구원 김상태(金相兌)연구위원은 “휴가가 따로 없는 오랜 농경문화의 영향으로 우리 국민의식에는 휴가를 어떻게 선용해야 할 지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서 있지 않다”며 피서지 난맥상의 근인(根因)을 분석했다.

김 위원은 “때문에 단지 먹고 마시며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것이 아닌 취미 개발과 자녀 교육의 장으로 휴가를 활용하는 선진국형 풍토가 정착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정부와 관련 단체, 그리고 학교가 나서 꾸준한 홍보 및 교육으로 이를 앞당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이제 우리도 그저 일과성으로 문제점만 꼬집고 지나가는 데서 벗어나 휴가 문화 개선을 위한 연구를 본격화할 때가 됐다”며 정부와 사회의 체계적 접근 필요성을 강조했다.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 협의회 김미화(金美花) 사무처장은 “문제는 법과 제도가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행정력과 당국의 의지가 태부족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처장은 “백사장 쓰레기 무단 투기 50만원, 담배 꽁초 4만원 등 환경오염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은 충분히 엄격하다”며 “하지만 100만이 몰린다는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 단속요원이 100명 뿐인 현실에서 어떻게 실효성 있는 예방과 단속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 인력이 부족하다면 문제 지역을 선정, 매우 강력한 시범 단속을 실시해 전국적 파급효과를 노려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제안이다.

아울러 지자체가 제공한 감시 및 단속 장비와 노하우를 토대로 피서지 주민들이 정화 활동에 나서는 민관 연계체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김 처장은 덧붙였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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