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가 5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아 섬뜩하다”는 한 시민의 코멘트에 21세기 초두 한국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평양에서 열렸던 8ㆍ15 민족통일 대축전 남측 대표단이 돌아온 21일 김포공항에서 벌어진 소동은 우리 역사의 시계 바늘을 반세기 이전으로 돌려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상반된 내용의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모여 앉은 두 그룹군중의 험악한 표정과 과격한 구호, 거친 말씨와 폭력적인 행동에서 피가 튀던 광복직후의 ‘좌우익 충돌’을연상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신문 사진이나 TV 화면에나타난 과격행동과 표정들은 과연 우리가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는지를 의심하게 한다.
젊은이에게 주먹질을 하는 어른, 그 쪽을 향해 머리를 빼 들고비난과 욕설을 쏘아대는 젊은이의 표정에는 증오와 독선 밖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북으로 돌아가라’ ‘평양 광란극’ ‘조선노동당하수인’ 같은 막말과 보혁 대결, 남남 갈등, 이념 대립, 찢어진 국론 등의 보도용어들도 그 악몽의시대를 떠올려 준다.
사진상으로는 전쟁의 주역이었던노장 층과 젊은 세대간의 갈등으로 비쳐지지만, 실제로는 지역과 계층과 정파같은 모든 대립관계의 세력간에 이런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더 걱정이다.
아니, 그것보다 내 생각만 옳고 남의 생각은 드러내지도 못하게 하는 사고의 폭력이 문제다. 다양성을 가장 큰 특질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남의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으며, 내 생각이 옳다고 믿는 만큼 남의 생각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공동체 구성원의 자격은 없다.
방북허가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일은 정치의 장에, 방북시의 적절하지 못했던 언행의 시비는 당국의 조사에 맡겨두고, 평화적인 의사표시로 자족하는 민주시민 의식이 너무 아쉽다.
정치인이나 당국의 역할에 실망하게 되면 선거 때를 기다려 투표행위로 응징하면 그만이다. 지금 상황이 50년 전처럼 쓰러뜨린 상대의 몸을 딛고 일어서지않으면 안 될 만큼 절박한 때는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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