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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가판이 나오고 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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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가판이 나오고 난 뒤

입력
2001.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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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생소할지 모르지만 신문에는 가판(街版)이란 게 있다. 조간신문의 경우 대략 직장인들이퇴근할 무렵 지하철역 등지에 가면 가판대에 다음날짜 신문을 볼 수 있는데, 그게 가판이다.밤사이 기사내용이 적지않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하루종일 벌어진 뉴스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그래서 가판신문 만을 전문적으로 배달해주는 사람도 있고 일반구독료보다 훨씬 비싼 돈을내고 꼬박꼬박 가판신문을 받아보는 사람도 많다.

주요 부처의 고위 간부와 대기업 홍보실 관계자들은 가판신문의 빼놓을 수 없는 정기구독자다. 요즘 각신문사가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 신문에 게재되는 기사를 온라인으로도 서비스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들 만큼 가판신문을 열심히 보는 사람은 드물다.

물론 업무 때문이다. 혹시 자기 부처나 회사에 관련된 기사는 없는지, 가판신문을 샅샅이 훑어본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가 있을 경우신문사로 연락을 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가판신문을 보고 신문사에 전해오는 요구사항은 대개 세 가지다. 첫째는 기사의 내용이 사실과다르다며 고치거나 빼달라는 것이다.

둘째는, 기사내용은 맞는데 제목이 과장됐거나 지나치니 바꿔달라는 것이며 셋째는 무조건 ‘봐달라’며 기사를 통째로빼달라는 것이다.

첫째의 경우는 취재대상자로서 정당하게 말할 수 있는 권리이지만 둘째나 셋째는 일종의 ‘로비’다.

사실 신문기사 중 틀리는 내용이 있는 때가 더러 있다. 사회면 데스크를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기짝이 없는 일이지만, 잘못된 기사에 관해 항의가 들어왔을 때는 망설임 없이 바로 잡곤 한다. 마감시간에 쫓기며 급하게 기사를 쓰다 보니 틀렸다고변명하고도 싶지만 그러지도 못한다.

그러나 둘째나 셋째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언론과 취재원의 사이에 ‘봐달라’는 식의 대화가 아직도계속되고 있는 것은 정말 한심하다.

잘못된 기사에 대해서는 비단 신문사에 전화하는 것 외에도 취재원이 취할 수 있는 법적 구제의 길은 얼마든지있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에게 아프더라도 맞는 기사는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어느 부처를 막론하고 자기 부처의 정책을 비판했을 때보다도 그 부처의 장(長)을거론했을 때 어필해오는 강도가 훨씬 세다.

어떤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1면 톱기사로 보도하면 기껏 그 업무를 담당하는 간부가 전화를 하거나 신문사로찾아오는 정도에 불과하다.

몇 번 해명하다 안되겠다 싶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하지만 가십기사 정도의 작은 기사라도 장관 이름 석자가 비판적으로나가면 그 부처의 주요 간부들이 동원돼 이름을 빼달라거나 기사를 고쳐달라고 전면적인 로비를 펼친다.

소위 일반인에게 힘이 있다고 알려진 기관일수록이런 증세는 심하다. 우리 관료사회가 정책이나 업무보다는 장관의 안위를 우선하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그보다 더 불쾌한 일이 있다. 기사에 대해 불만이 있으면 가장 먼저 기사를 작성한 기자나 그 부서의데스크와 얘기를 해야 할 텐데 무조건 ‘높은 사람’부터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다고 기사가 빠지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그렇게 하면 된다고믿는 전근대적인 사람이 있다.

특히 현재 언론개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현정부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언론과 접촉할 때 투명하게정상적으로 해야만 말의 앞뒤가 맞는다.

언론에 대해서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부 관계자들도 언론에 대해 ‘특별한 혜택’을 기대해서는안된다.

틀린 기사는 바로 잡아달라고 요구할 수 있지만 맞는 기사에 대해서는 ‘봐달라’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래 전에 있었던 언론과 취재원사이의 잘못된 관행은 이제 잊어야 한다.

신재민 사회부장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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