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자금으로 자사주식을 사서 종업원에게 나눠주도록 하는 이솝(ESOPㆍ우리사주신탁)제도가 ‘구조조정의 성공’과 ‘고용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7월 이솝제도의 법률적 기틀을 마련한 근로자복지기본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데 이어 최근정부가 이 제도의 내년 1월 도입 방침을 밝히면서 이솝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이미 1974년 이 제도를 도입한 미국에서는 90년대 초반까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경영위기에 빠진 기업들의 도산과 대량실업을 막는 방법으로 이솝이 활용됐다. 미국의 대표적인 이솝 기업들을 통해 성공조건 등에 대해 분석해본다./편집자 주
“이솝기업을 비롯한 종업원 소유기업이 일반 기업보다 영업이익, 배당률, 주가 등에서60%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솝기업들과 접해보면 절대 다수 경영진과 종업원이 경영성과에 만족해 합니다.” (전미종업원소유센터ㆍNCEO관계자)
3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미국 이솝제도에 대한 평가는 이처럼 성공적이라는 견해가압도적이다. 크라이슬러자동차, 위어톤철강 등 경영 위기에 직면했던 대표적인 제조업체들의 회생기반이 됐던 것도 바로 이솝제도였다.
이솝은 종업원지주제의 한 형태이긴 하나 주식을 사는 자금이 종업원의 임금이 아니라회사 돈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우리사주제와는 다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시행된 우리사주제가 임금이나 퇴직금으로 주식을 사도록 해 주가 위험을 고스란히종업원이 지도록 했다면, 이솝은 주식을 임금 대체수단이 아닌 ‘플러스 알파’로 지급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1만1,000여개 기업이 이솝을 도입, 850만명 종업원이 이를통해 자사주를 소유하고 있다. 이들 종업원이 보유한 자사주의 총 평가액은 1999년말 현재 약 5,000억달러(650조원), 종업원 1인당 평균보유액은 약 5만8,000달러(약 7,500만원)에 달한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종업원들의 지분율이 높을수록 경제적 성과가 우수하며, 특히종업원의 경영참가 프로그램을 동시에 도입하고 있는 기업일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현재 전체 이솝 기업 중 30%가 종업원(경영권) 소유 기업이며, 이중 절반은 종업원 100% 소유 기업이다.
3,000개 회원사를 두고 있는 이솝 협회(ESOP Association)의 대외협력담당자인알리슨 화이트는 “이솝을 통해 퇴직 후 받은 소득이 회원사 종업원 1인당 평균 17만3,224달러(2억2,500만원), 회사 당 가장 많이 받은사람의 1인당 평균은 83만9,138달러(10억9,000만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솝은 노사관계를 원만하게 하고, 근로자가 주인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하게 하는 동력이된다. 국내에서도 소득분배의 형평, 재벌 소유구조 개선, 노사관계 원활화 뿐만 아니라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외 자본의 국내기업 독식을 막기 위한대안으로도 이솝이 조기 정착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이솝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솝 관련 법률 동향 등을 분석하는 비영리단체인NCEO의 코리 로젠 소장은 “이솝 도입을 위해 상담을 해오는 기업들에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이익이 나는 회사냐’는 것이다. 이익이 나지 않는회사는 이솝을 해도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솝을 통해 과반수 주식을 종업원이 보유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이솝유지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미국 노총(AFL-CIO)의 국제문제담당 이사보인 필 피시만은 “임금이나 퇴직금 대신자사주를 줘 근로자의 미래를 위험하게 만드는 방식의 이솝 도입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솝은 노사 모두에게 ‘윈-윈’전략이 될 수도 있지만 잘못 운용하면 경영자에겐 경영권박탈, 종업원에겐 퇴직금 상실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차입형 이솝의 구조
워싱턴 소재 이솝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 전체 이솝 시행기업의 약 75%가 차입형을채택하고 있다. 차입형 이솝은 우선 회사와 별개로 이솝신탁이라는 별도 법인을 만들어, 이 신탁이 회사의 신용을 담보로 외부 금융기관으로부터자금을 차입해 자사주를 매입하게 한다.
그 뒤 회사가 이익의 일부를 신탁에 출연해서 차입금을 갚아 나가도록 한다는 게 기본적인 작동 구조이다.신탁은 주식을 사서 종업원들에게 배분하고, 퇴직자가 생기면 이를 되사는(바이백)역할도 한다.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이솝
우리 정부도 상장ㆍ등록 여부에 관계없이 기업이 종업원에게 성과급을 현금 대신 자사주로 주는 이솝을 내년 1월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정부는 종업원이 회사로부터 성과급으로 자사주를 받았을 때 내야 하는 근로소득세 부과시기를 늦추고, 기업에 대해서는 자사주 매입자금을손비로 인정해 줄 방침이다.
현재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이솝이 ‘퇴직금 대체’ 수단이냐, ‘퇴직금+알파’의 개념이냐는 것이다.재정경제부는 당초 이솝을 퇴직금 대체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노동계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있는 상태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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