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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무질서 되풀이 올 피서지 백태'휴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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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무질서 되풀이 올 피서지 백태'휴가는 없었다"

입력
2001.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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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마찬가지다. 그저 먹고 마시며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퇴행적 휴가문화속에 환경과 시민의식은 또다시 내팽겨쳐 졌다.피서지마다 ‘한철 장사로 1년을 버티겠다”는 바가지 상혼이 판을 치고 해변과 계곡은 밤마다 산을 이룬 쓰레기로 신음했다.

취객과 청소년의 고성방가와 낯뜨거운 탈선도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 피서지 주민과 당국은 휴가행렬이 완연히 잦아든 지금, 피서객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와 무질서의 흔적을 지우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

동,서해안의 유명 해수욕장에서 우리의 후진적 피서 행태를 되짚어봤다. /편집자주

#해변은 밤마다 쓰레기장

17일 오후 6시 동해안 경포 해수욕장.

서울에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기자를 맞이한 것은 이글거리는 태양과 넘실대는 파도, 그리고 그림처럼 잘 정돈된 백사장이었다.

흰 모래 벌판을 가로질러 3~4m 간격으로 쓰레기통이 설치돼 있고 백사장 어디에도 버려진 오물을 찾기 어려웠다.

적당히 달궈진 모래의 감촉을 즐기며 해변을 거니는 연인들…. 피서지가 무질서하다는 항간의 이야기는 잘못 알려진 것일까.

“아이고, 말도 마세요. 고생해서 치워놓으면 뭐해요. 하룻밤만 자고 나면 다시 난장판으로 바뀌는데….”

안내소에서 만난 한 안전 요원은 손사래를 치면서 다음날 치러야 할 쓰레기와의 전쟁을 걱정했다. 그는 “피서객들이 낮에는 다른 사람의 눈도 있고 해서 비교적 질서있게 행동하지만 밤이 되면 통제하기가 어려워진다”고 한숨을 쉬었다.

저녁 10시 30분. 어둠이 짙게 깔리자 백사장은 바다 바람을 쐬려는 피서객들로 다시 붐비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언제 버렸는지 쓰레기 봉투가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다.

18일 동틀 무렵 다시 찾아간 해변의 풍경은 전날 만났던 안전 요원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휴지, 비닐 봉지, 은박 돗자리가 모래 바람에 어지럽게 나뒹굴고 빈병과 음료수 캔이 모래속에 박혀 있었다.

피서객들이 버린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 들었다가 파도가 칠 때마다 밀려와 해변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양양군청에서 이 곳에 파견 나온 한 공무원은 “피서객들에게 쓰레기 봉투를 무료로 나눠줘도 받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백사장에서 만난 한 피서객은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사람도 문제지만 마을 주민들이 야영비만 받아 챙기곤 쓰레기를 제대로 수거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17일 아침 대천 해수욕장의 드넓은 백사장도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지난달 20일 보령시가 해수욕장 쓰레기 수거를 민간 업자에 맡긴 후 생긴 현상이다.

민간업체 측은 정규 쓰레기 봉투에 담지않은 쓰레기는 방치하고 있고, 시는 임시방편으로 자체 인력을 투입해 수거에 나서고 있지만 그야말로 역부족. 넘실대는 파도위로 과자 봉지며 음료수통이 춤을 추고 있다.

#고무줄 요금, 방관하는 당국

16일 오후 7시 대천역. 밀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피서객들을 누비는 건장한 ‘삐끼’ 청년들의 호객행위가 공포 분위기를 자아낸다.

“4인 1실 하루에 6만원.” “해수욕장 가면 그냥 바가집니다. 정말 싸게 해드리는 거예요. 며칠전만해도 20만원 받던 방인데…” J여관 업주 역시 2인1실에 5만원을 요구하면서 “지난주엔 15만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보령경찰서 추계에 따르면 해수욕장 근처 업소에 고용된 삐기는 60~70명선.

이달초 피크때는 아예 서울역에서부터 따라 붙어 손님을 유치했다고 한다. 대천 관광협회의 한 관계자는 “7,8월 성수기 때는 전치 숙박업소의 80~90%를 외지인들이 임대해 영업중인 데다 단속과 처벌 규정 또한 허술해 바가지 요금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18일 오후 6시 낙산해수욕장 주변의 민박집에서도 하루 숙박료 5만원을 요구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보름전만 해도 13만원까지 받았다”면서 “민박 요금은 정해진 기준이 없고 가격을 자율적으로 정해 신고만 하면 되므로 불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결국 속초 시내로 들어가 하루 숙박료 3만원을 내고 여관방에서 짐을 풀었다.

올해 강원도 동해안을 찾은 피서객은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달 10일 강원도내 95개 해수욕장이 개장한 이후 17일 현재 1,500만명이 찾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총 입장객 1,077만명을 이미 초과했고 1995년 630만명의 2배에 가까운 수치. 11월 대관령 고개 직선화 공사가 끝나면 서울-강릉 통행시간이 1시간이상 줄게 돼 관광객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숙박 업소의 수가 이 같은 수요 증가를 따라잡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가뜩이나 기승을 부리는 ‘바가지 민박’이 더욱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소음..방종..

17일 밤 경포 해수욕장 인근의 간이 해수욕장. 군경계 지역으로 찾는 이가 적어 비교적 한적했던 이 곳에 갑자기 사용이 금지된 폭죽이 어둠속에서 펑펑 터져 나왔다.

폭죽 사용자는 즉심에 넘기도록 돼 있지만 피서지 이미지 손상 우려가 있어 실제로 이 규정이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주민들의 귀띔. “폭죽을 자제해달라”는 방송이 나오자 폭발음이 잠시 줄어드는 가 싶더니 이내 이어져 밤새 계속됐다.

해수욕장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 이모씨는 “해마다 이맘 때만 되면 폭죽 소음으로 저녁에 제대로 잠을 못자고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겠다고 호소한다”며 “언제까지 이런 꼴불견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진저리를 쳤다.

백사장 한켠에는 10대 3~4명이 술에 취한 채 거친 말씨를 써가며 휘젓고 다녔지만 제지하는 이가 없었다.

밤바다를 바라보며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가족 단위 피서객들은 고성방가에 방뇨도 서슴지 않는 이들을 피해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다.

경포 해수욕장엔 분수대가 있었지만 거기서 머리를 감고 팬티 빨래까지 하는 청소년들 때문에 최근 폐쇄됐다.

“세면장 이용료 5,000원이 아깝다는 거예요. 자식 뻘밖에 안되는 그들에게 주의를 주면 사과는 커녕 오히려 무슨 상관이냐며 대들어요.”

강릉시 권혁문(權赫文) 관광문화과장의 말이다. 같은 날 밤 대천 해수욕장에서도 다연발 폭죽탄이 터지고 있었다. 불꽃놀이용이 아니라 화약으로 분류되는 위험 인화물질이다. 매캐한 내음이며 사방에 퍼지는 연기가 전장(戰場)을 연상시킨다.

일반 상점에서의 판매가 금지된 품목임에도 어디서 구했는지 밤새 수십발은 족히 터진다. 경찰이 단속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다지 효과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단속하니까 그 재미로 더 하는 것 같아요. 터뜨리고 도망치고, 또 터뜨리고 도망치고… 저희만 지치지요.” 한 의경의 푸념이다.

강릉=이민주기자

mjlee@hk.co.kr

보령=노원명기자

narzis@hk.co.kr

■"해수욕장이라면 이제 넌더리가 납니다"

3일부터 5일까지 2박3일간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에 피서를 다녀온 김장춘(金長春ㆍ38ㆍ회사원)씨는 부인과 초등학생인 두 딸에게 “앞으로 피서를 안가면 안 갔지 국내 해수욕장엔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푸념으로 피서를 마무리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올해 김씨 가족이 겪었던 고생과 짜증을 생각하면 지금도 넌더리가 난다.

3일 저녁 오후 6시께 해수욕장에 도착, 나흘전 대천관광협회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예약한 H 민박집을 찾았다. 예약 당시 약정금액은 1박에 5만원.

그러나 주인은 10만원이 아니면 방을 못 주겠다고 강짜를 놓았다. “당초 약속과 틀리지 않느냐”는 항의에 “선금을 지불한 것도 아닌데 무슨 예약이냐”며 되레 큰 소리.

마지못해 들어간 방은 좁고 더러운 것은 차치하고라도 주인집 가족사진과 온갖 잡동사니가 널려 있어 도저히 2박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바탕 주인과 실랑이 끝에 요금을 환불 받으면서 느꼈던 후련함이 낭패감으로 뒤바뀐 것은 불과 얼마 후.

주변의 여관, 민박집을 통틀어 5만원 이하로는 방이 없는데다 그나마 욕실 등 편의시설이 갖춰진 방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분 거리의 보령시내까지 나가 알아봤으나 사정은 마찬가지. 다시 돌아와 15만원짜리 민박집에 짐을 풀고 나니 저녁 9시가 넘었다.

4일 새벽 한 곳뿐인 공동 샤워장에서 대충 몸을 씻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따발총처럼 터지는 다연발 폭죽소리에 아이들이 놀라 보채고 해변가 광장에서 펼쳐진 라이브쇼의 굉음역시 새벽까지 이어졌다.

‘피서지가 다 그렇지.’ 마음을 넓게 가지려는 인내도 새벽 4시가 넘어 시작된 옆방 투숙객들의 난장판 소음 앞에서는 한계에 부딪혔다.

웃음소리, 고함소리, 여자 비명소리에다 물건 날아가는 벽에 부딪히는 소리까지…. 참다못해 주인을 찾아 제지를 요청했지만 그저 알았다고만 할 뿐 백년하청.

날이 밝아 마주친 옆방 투숙객들은 자신의 학교 제자들보다도 어려 보이는 남녀 3쌍. ‘어린 아이들이 혼숙에, 음주라니….’ 기가 찼지만 참았다.

4일 오전 백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파라솔을 빌리려는데 자그마치 3만원을 요구했다. 아이들 간식을 사러 갔던 부인은 “400원짜리 새우깡을 어떻게 1,000원에 팔 수 있느냐”며 흥분했다.

함께 사온 생수통 마개를 돌렸더니 이미 따져 있다. “빈 통에 수돗물을 채운 것은 아닐까.” 해수욕을 마친 후 2,000원을 주고 들어간 해변 샤워장에는 벗어던진 속옷과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고 악취가 진동했다.

4일 밤 저녁식사후 이들과 모래사장을 걷다 뒤엉킨 남녀 4쌍과 마주쳤다. 황급히 발걸음을 돌렸지만 이번에는 술에 취한 남자 두 명이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시비를 건다.

여자들끼리 모인 자리에 남자아이들이 다가가 수작을 거는 모습, 입욕시간을 지나 바다에 들어가려는 취객과 이를 막는 의경들의 실랑이가 곳곳에서 연출됐다.

5일 귀경 대천역에서 서울역까지 올라오는 무궁화호 열차. 입석 승객들로 발디딜 틈없는 객차 안에서 10대로 보이는 피서객 8명이 ‘삼육구 게임’을 2시간이 넘게 계속했다. ‘너무 시끄럽지 않느냐’고 점잖게 타일렀지만 못들 척 대꾸가 없다.

잠시 후 누군가 고함을 꽥 질렀지만 이번에는 들은 듯 만 듯 안면몰수. 3일 간의 피로와 짜증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보령=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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