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간한 약전(藥典)인 '대한 약전'이 세계보건기구의 공인을 받지 못한 것은 의약 당국의 안이한 행정 탓이다.정부는 최근 미래의 전략산업으로 '바이오산업'을 지목,신약개발을 집중 지원해 왔으나 정작 신약개발의 기준서 격인 약전조차 국제공인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정부 관계자들은 약전 문제에 대해 "다른 주요 업무들에 치여 소홀히 한 것이 사실"이라며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했다.정부의 무관심은 약전에 관한 전담기관은 커녕 전문인력이 없는 것에서도 확인된다.우리나라는 5년마다 학계와 정부쪽 관계자들로 약전편찬위원회를 구성해 개정판을 내고 있으나 교수들에게는 부업에 지나지 않고 정부쪽도 성의가 없어 형식적인 작업에 그쳤다.미국 등 주요 국가들이 약전개정위원회 등 전문기관과 수십 명의 전문인력을 투입,국제 제약계의 흐름과 자국의 신약개발 상황을 약전에 반영시켜 국민건강을 지키고 국제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총력전을 펴는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예산지원도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WHO가 우리 약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의약품을 믿지 못한다는 의미이다.때문에 국제무대에서 의약품을 수출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고,특히 외국과의 의약 관련 협상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잇다.
1999년 북한에 말라리아 환자가 급증했을 때 우리나라가 50만달러 상당의 백신을 현물 지원하려다 WHO가 "치료약제에 대한 품질평가가 미비해 백신 지원은 곤란하다"고 밝혀 현금으로 지원한 것은 우리 의약계의 현주소를 보여준 사례다.정부와 제약업체등이 약전이나 '우수의약품 제조관리기준'등 국제 기준에 대한 인식이 없어 망신을 당한 것이다.
우리 약전이 국제공인을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 등 외국의 약전을 그대로 베꼈기 때문에 창의력이 없고,국제 기준조차 제때에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그간 국내 의약시장이 수입에 의존했고 신약개발이 거의 전무했던 것도 한요인으로 꼽힌다.
이태희 기자
■藥典이란
약전이란 의료에 사용되는 중요한 의약품에 대해 제법(製法) 성상(性狀) 성능 품질 및 저장방법 등의 적정을 기하기 위해 정해진 기준서로 의약계의 ‘헌법’에비유된다. 제약회사는 약전에 나온 방법대로 약품을 만들고 보관해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환자가 복용하는 약품들은 약전의 규정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새로운 약품이 개발되고 수입되기 때문에 약사법에 따라 약전은 5년마다 한 번씩 개정하도록 되어 있다.
1958년 최초로 대한약전을 제정한 지금까지 7차 개정을 했으며, 내년 말 8차 개정을 앞두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나라마다 약전이 제정되어 있어 세계적으로 통일된 약전을 마련하지 못하다가 19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국제약전’을 제정했다.
현재 미국 스위스 일본 덴마크 이탈리아 등 의약 선진국뿐 아니라 중국 멕시코 인도 파키스탄 우크라이나터키 이집트 등 36개국의 약전이 WHO의 공인을 받고 있다.
약전 편찬업무는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해 오다 99년 7월 식품의약품안정청으로 이관했으나 의약품 평가부에서 부수업무로 다루는 정도이고, 전담직원조차 없다.
이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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