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이화여대 후문쪽의 한 카페. 오후5시가 되자 카페 한 구석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얼굴이 낯익은 아줌마 1명과 머리에 노랑ㆍ갈색 물을 들인 여대생6명이다. 아줌마가 “협찬은 잘 돼가니?”라고묻자 여대생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언니도 잘 지내셨어요?”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 요즘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여성운동가 이숙경(38ㆍ서울시립대 여성학 강사)씨와 여성문화기획 불턱 회원들이다.
28일부터 11월30일까지 서울 중구 장충동 또하나의문화 교육장에서 아줌마와 여대생을 위한 여성강좌 ‘내공 프로그램’을 여는 이씨는EBS TV ‘삼색 토크’ 출연, ‘담배피우는 아줌마’ 출간 등으로 유명한 ‘아줌마 페미니스트’.
여성문화기획 불턱은 9월8일 서울 중구 을지로5가 훈련원 공원에서 제3회 월경 페스티벌을 여는 X세대 여성운동가 그룹이다.
이들의 인연은 3년 전으로거슬러 올라간다. 이씨가 98년 9월 서울시립대에서 처음으로 ‘내공 프로그램’을 열었고, 당시 참가한 이 대학 총여학생회가 그해 12월 제1기 불턱을 결성한 것이다.
제1기 불턱은 99년 ‘유혈낭자’라는제목으로 제1회 월경 페스티벌을 개최해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내공프로그램’의 핵심은 이런 거예요. 참을 수 없는 일상의 분노와 부조리를 이벤트를 통해 모조리 드러내자.
여성들 마음에 숨어있는 내면의 힘(내공)을 되살려 내자. 이 내공이야말로 학원에서는 취득할 수 없는 여성들의 귀중한 자격증이다.”(이숙경)
“‘불턱’은해녀들이 옷을 갈아입는 장소를 말하는 제주 방언입니다. 서로 마음놓고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라는 뜻이죠.
월경 페스티벌도랩과 게임, 퍼포먼스 등 여러 이벤트를 통해 여성의 월경을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말함으로써 여성의 몸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하는 행사입니다.”(불턱 홍보담당 황정혜ㆍ23ㆍ한국외대4)
소모임 활동을 통해 새롭고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여성운동을 펼친다는 점에서 이들은 한 뜻이었다. 이벤트 준비와 홍보, 진행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부대끼다 보면 결국 세상도바꿀 수 있다는 확신. 그러나 386세대와 X세대, 아줌마와 여대생의 간격은 분명히 존재했다.
“과거 386세대 페미니스트가 성폭력, 종군위안부, 매맞는 아내 등 주로 여성들의 ‘고통’을부각시켰다면, 요즘 운동가들은 여성으로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에초점을 맞춘 것 같습니다.
이번 월경 페스티벌 제목을 ‘얘기치 못한 즐거움’이라고붙인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요?”(이숙경)
“선배여성운동가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저희는 모임 속에서 즐거움과 정체성을 찾습니다. ‘나는페미니스트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불턱이죠.”(나김영정ㆍ23ㆍ이화여대 대학원1)
“‘아줌마’는분명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몇 안 되는 ‘힘있는 여성’이죠. 하지만 너무자기 가족에만 관심이 쏠려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최윤선ㆍ21ㆍ서울시립대3)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