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년 8월21일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가 태어났다. 1874년 몰(歿).미슐레가 산 19세기 유럽은 역사의 진자가 혁명과 반동 사이에서 심하게 요동치던 시기였다. 1815년 나폴레옹1세의 몰락으로 성립된 반동적 빈 체제는 1830년의 7월혁명에도 끄떡없다가 1848년 유럽 전역의 혁명으로 와해됐다.
뒤이은 독일 통일 운동은 1870~71년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마무리됐지만, 그 전쟁의 끝에 벚꽃처럼 화사하게 피었다가 진 파리 코뮌은 노동자들의 피냄새로 유럽의 공기를 불온하게 만들고 있었다.
미슐레는 이런 격동의 시대를 진보적 역사학자로 살았다. 그는 늘 민중의 입장에 굳건히 서서 역사를 바라보며 반동 세력을 감시했다.
1851년 대통령 루이 보나파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하고 그 이듬해 나폴레옹 3세라는 이름으로 제위에 오르자 미슐레는 파리에서 추방되지만, 그는 오히려 이 뜻밖의 자유 속에서 만년을 보내며 집필에 전념할 수 있었다.
‘프랑스사’‘프랑스 혁명사’ ‘19세기사’ 등 미슐레의 주저들은 황제가 그를 대학에서 쫓아내지않았더라면 탈고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파리에서 추방되기 전 미슐레의 마지막 직장은 콜레주 드 프랑스였다. 콜레주 드프랑스는 1530년 프랑수아 1세가 왕립 콜레주라는 이름으로 세운 고등교육 기관이다. 이 학교는 신학 중심의 소르본에 대항해 르네상스가 몰고 온 새 학문들을 가르치며 자유로운 학풍을 만들었다.
오늘날 콜레주드 프랑스는 프랑스 학문의 정점이다. 이 학교 교수가 되는 것은 프랑스에서 학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명예다. 지금 이름으로 바꾼 1815년 이래 콜레주 드 프랑스는 시험이나 학위 과정이나 청강 자격 규정이 없는 개방 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