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부도위기로 치닫던 1997년 11월16일. 가명으로 정체를 감춘 미셸 깡드쉬IMF(국제통화기금)총재 일행이 극비리에 입국한다. 이들은 서울시내 호텔에 머물며 구제금융을 전제로 몇몇 정부 관계자와 조건 등에 대한 협의를 시작했다.그러나 우리 정부의 표정과 말은 딴판이었다. “(구제금융 신청은)절대 없다”고 발뺌했고, 국민은 반신반의하며 한가닥 희망을 걸었다.꼭 5일이 지난 11월21일, 구제금융 신청 방침이 발표된다.
외환위기의 징후는 이미 그해 초부터 곳곳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거짓말은 끊이지 않았다. 부실대책이 속출하는 가운데 “문제 없다”는 당국자 발언이 신문지상을 연일 장식했다. 거짓말의 댓가였을까.
기대를 걸었던 금융관련개혁법안도 여야 정쟁으로 8월 국회에 상정된 뒤 그해 연말까지도 낮잠을 잤다.
그로부터 3년8개월여가 지난 요즘, 국민은 다시 착잡한 심정으로 ‘IMF 드라마’의 재방송을 보고 있다. 재방송의 또다른 제목은 ‘항공 IMF’. 정부의 부실대책과 무능, 거짓말, 여야 정쟁 등이 빚은 ‘항공안전위험국(2등급)추락’의 전말이 IMF 당시의 상황과 꼭 같다.
구제금융 신청과 미 연방항공청(FAA)의 2등급 판정이 결정된 뒤 “신청 안한다”, “결정된 바없다”고 거짓말한 모습은 판에 박았다.
지난해 6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로부터 항공안전감독의 문제점을 지적받고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항공관련법안이 아직까지도 국회에 계류중인 것도 그대로다. 단지 주연과 대사가 바뀌었을 뿐이다. ‘IMF 드라마’가 언제 또 재방송될지, 두려움마저생긴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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