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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 단편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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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 단편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입력
2001.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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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30)씨는‘히에로니무스 보스’라는책을 읽고 있었다. ‘중세 말의 환상과 엽기’라는 부제가 달린 것이었다.‘엽기’라는 단어는 백씨의 1년여 전 장편 ‘목화밭 엽기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백씨는 “솔직히 이런 책이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것 같다”고말했다.

그의 두번째단편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문학동네 발행)이 이번 주말 출간된다. 백씨는 “단편집을묶고 보니 희미하게나마 무엇인가 보인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최성실씨는 백씨가 본다는 그 ‘무엇’을 “죽지 않고 되살아나는 유령의출현”이라고 부른다.

백씨 소설의 화자 대부분이죽은 사람을 좇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은 그러나 화자의 기억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다.

백씨는 화자가 죽은 사람을 찾아 다니는 이유에 대해 “외롭기 때문”이라고 간결하게 설명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는 화자의 발걸음은 경쾌하지만 쓸쓸하다.

표제작‘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은한국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장원(莊園)의 저택을 배경으로 삼는다.

어렸을 적 심부름을 했던 장원을 19년만에 방문한 ‘나’는 도련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년은 친형제처럼 놀았던 장원의 도련님aw를 마음 한 구석에서 질투하고 있었다.

“(걸을 때)소리가 나는 건 영혼이 맑지 못하다는 얘기야”라는 타박에 심부름꾼 소년은도련님의 우아한 걸음걸이를 베끼기 시작했다. 소년은 다음으로 aw의 표정을 베꼈고, 목소리와 어투를 베꼈다. 그는이제 aw의 일기장을 베낀다.

심부름꾼이마지막으로 훔쳐본 aw의 일기장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심부름꾼 아이가 매시간 나를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르쳐주고 싶다.

아무리 읽어도 나와 똑같은 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는 것을. 너는 영혼이 텅빈 아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결말이지만 섬뜩하다.

도련님의 걸음걸이와 미소와 목소리를베끼면서 심부름꾼 소년의 영혼은 조금씩 빠져나갔다. 도련님은 이미 죽었다는 얘기로 시작하지만, 사실 죽은 사람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었다는 결말.

소설에서는 낯선 방식이지만 영화에서는 자주 보아왔던 형식이다. 영화 ‘앤젤 하트’나 ‘식스 센스’가 그렇다.

사실 작품집에실린 단편 대부분이 이런 반전의 결말을 따른다. ‘검은 초원의 한켠’에서는 주인공이 죽음의 공간을 지나온 것이 뒤늦게 감지되고, ‘구름들의 정류장’에서는 마지막에 이르러 노래부르는시체들이 보인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극적 장치였던 것이, ‘백민석 소설’이라는 옷을 입게 되면 열려진해석의 가능성이 된다.

이런 까닭에그의 소설은 “문화를 먹고 자란 신세대의 작품”(문학평론가 정과리)이면서, 소설가 복거일씨의 말처럼 “끔찍하지만견딜 만한 지옥 같은 세상의 지도”라는 의미를 함께 찾을 수 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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