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징용ㆍ징병된 희생자를 군국주의의 신(神)으로 모신다는 게 기막힐 뿐입니다.”야스쿠니(靖國) 신사의 한국인 희생자 합사 취소 운동을 돕고 있는 한ㆍ일부부 기정민(奇貞旼ㆍ33ㆍ여)씨와 동경농업대학 박사인코시오 카헤이(小海平ㆍ35)씨.이들은 13일부터 4일간 일본 정부에 합사 취소를 요청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한국 유족대표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통역은 물론 우익 단체들과 몸싸움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 3월 결혼에 이르기까지 집 안팎의 완강한 반대로 기씨는 마음 고생이 심했지만 남편이 자랑스럽기만하다. “아버지가 평생 꺼낸 적 없던 창씨개명했던 일과 학교에서 우리말을 쓰다 매 맞은 일제치하 기억을 털어놓으시는데 할 말이 없더군요”.
하지만 기씨는 이웃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고 직접 행동하는 코시오씨의 모습을 보면서결혼을 악착스럽게 고집했다. “부끄럽지만 한국인이 일제하의 피해보상도 변변히 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남편을 통해 알았어요.
남편이 아니었다면 평범한 주부로 지내겠죠.” “저보다 일본인인 남편이 한국인 희생자 피해보상이나 합사 문제에 더 열성적이에요”.
한사코 결혼을 반대했던 기씨의 아버지도 코시오씨의 이런 활동을 보고 지금은 일본인사위를 믿음직스러워 하며 아끼게 됐다.
코시오씨가 태평양 전쟁 피해자 배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 평화유족회회장 오가와 다케미츠(小川武滿ㆍ88) 목사로부터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1991년 한국인 BㆍC급 전범의 피해보상 소송을 도우면서부터. 기씨는 93년 어학연수를 왔다가 남편의 이 일을 도우면서 인연을 맺었다.
“우리나라는 피해의식만 내세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같은데 피해현황 등 체계적인 조사부터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정부도 소극적 대응으로만 일관할게 아니라 당당하게 밀어붙였으면 좋겠어요.” 코시오씨의 한국이해를 돕기 위해 이들 부부는 20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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