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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어드벤쳐21] 제10회 '빛을 만드는 사람들-방사광가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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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어드벤쳐21] 제10회 '빛을 만드는 사람들-방사광가속기'

입력
2001.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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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후 3분.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이 만들어진 것은 이 짧은 시간이다.하지만 150억 년이 지난 지금도 인류는 이 물질들을 모두 밝혀내지 못했다.‘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나’ 하는 명제를 풀기 위해 인간은 오래 전부터 노력해왔다. 그리스 시대 엠피도클레스는 세상이 흙, 공기, 물, 불이라는 4원소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BC 400년 데모크리투스는 세상이 원자(atom)라는 물질과 빈 공간으로 이루어졌다는 놀랄 만한 주장을 했다.

2,400년이 지난 후에야 물리학자들은 데모크리투스의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세상의 비밀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바로 가속기라는 연장을 통해서다.

■가속기와 입자물리학

1909년 러더포드는 방사능 광선 중 하나인 알파선이 투사되는 실험장치를 만들었다.이 과정에서 알파선이 작고 단단한 무엇인가에 부딪혀 튕겨나가고 꺾인다는 것을 밝혀냈는데 바로 원자핵의 발견이었다.

1919년 러더포드는 원자핵이 다시 양성자로 쪼개질 수 있음을 알아냈고, 1931년 채드위크는 원자핵에서 중성자를 찾아냈다.

또 일본 물리학자 히데키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떨어지지않고 뭉쳐있게 하는 힘, 즉 중간자를 발견했으며 물리학자들은 양성자와 중성자도 쿼크라는 물질로 쪼개질 수 있음을 알아냈다.

이러한 물리학자들의 노력으로 마침내 소립자물리학 ‘표준이론’이완성된다. 표준이론에 따르면 물질은 각각 3쌍의 쿼크(업-다운, 스트레인지-참, 보텀-톱)와 경입자(전자-전자뉴트리노,뮤온-뮤온뉴트리노, 타우-타우뉴트리노)로 만들어졌으며 이들 상호간에는 4종류의 힘이 존재한다.

물질의 비밀을 밝혀낸 표준이론을 가능케 한 것이 가속기였다. 가속기는 원자들을 빛의 속도에 육박하는 빠른 속도로 가속ㆍ충돌시켜 내부 구성 물질들이 튀어나오게 하는 실험도구.

1932년 로렌스는 사이클로트론이라는 성능 좋은가속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유럽 14개 국은 1950년 둘레 27㎞인 세계 최대 가속기 유럽 CERN을 설립하기위해 공동 투자했다. 이 가속기는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 지하에 있다.

■빛을 파는백화점, 방사광 가속기

가속기를 이용해 입자들을 쪼개는 실험을 하던 과학자들은 의외의 반갑지 못한 손님을 만난다. 가속된 입자들이 만들어낸 빛(光)이다.

초기에 물리학자들은 이 빛을 쓸모없게 여겨 없애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곧 가시광선 외에도 엑스선,적외선 등 모든 종류의 빛이 엄청난 밝기로 쏟아져 나오는 가속기가 다방면의 과학실험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렇게 해서 입자 연구보다는 빛을 만들어 낼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 방사광 가속기다. 방사광 가속기의 엑스선을 이용하면 그 동안 절단해서 현미경으로 관찰해야 했던 모기의 내부 구조까지 살아 움직이는 채로 관찰할 수 있고, 미세한수술에 사용되는 마이크로 미터 크기의 톱니바퀴 제조도 가능하다.

또 DNA나선구조를 0.2 나노미터 크기로 볼 수 있으며 양성자 빔 투사만으로두개골 절단 없이 뇌수술을 끝낼 수도 있다.

1988년 건립된 포항공대 방사광가속기는 2.5기가전자볼트로 입자들을 가속한다.둥근 모양의 원형가속기(저장링)는 둘레 280㎙ 규모로세계 4위급, 직선 모양인 선형가속기는 160㎙로 세계 3위급이며 내부는 지구상공 200~1,000㎞에 해당하는 진공상태로 유지된다.

한쪽 전자총에서 쏘아져 고주파를 통해 지속적으로 가속되는 입자들은 빛보다 1초에6.3㎙ 모자란 속도로 저장링 내부를 원을 그리며 돈다.

이 때 발생하는 빛을 빔라인으로 뽑아내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실험에 활용하고 있다. 방사광 가속기는 빛을 만드는 공장인 동시에 이 빛을 파는 백화점인 셈이다.

■ 차세대 가속기의 등장을 기다리며

표준이론이 완성됐지만 물질의 비밀을 완전히 알아내기에는 갈 길이 멀다. 성질이 비슷한 파이라는 중간자와 뮤라는 소립자는 어떻게 다른가, 케이라는 입자는 어떻게 1만 년 이상 존재할 수 있는가, 심지어 물질에는 왜 질량이 존재해야하는가 하는 의문에도 답을 하지 못한다.

질량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던 중성미자가 최근 질량을 가진 것으로 밝혀진 것에서 알 수 있듯 표준이론도 끊임없이 수정된다.

초대칭입자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런던과 제네바를 양끝으로 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가속기가 필요하다.

현재밝혀진 입자를 쪼개 더 작은 물질 구성요소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둘레가 명왕성까지의 거리에 맞먹는 가속기가 필요하다.

물리적으로 완성이 불가능한 가속기들이다. 따라서 이제 필요한 것은 규모에 의존하지않는 신개념의 가속기이다.

가속기의 한계 때문에 소립자물리학의 발전을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다. 가속기의 미래를 바꾸는 사람이 새로운 물리학의 미래를 열 수 있고, 그 것은 젊은 과학도의 몫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강연 이모저모

“저기 저 큰 게 빛을 뽑아내서 연구하는 데 쓰는 건가봐.” “와!”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저장 링의 둘레만 28㎙에 이르는 포항방사광가속기는 그 규모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기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포착해 사진을 찍는 등의 연구성과로 둘러보는 이들을압도했다.

18일 ‘사이언스어드벤처21’의 강연에 앞서 포항공대 방사광가속기를 견학한 200여 명은 저장 링에서 빛을 뽑아내 생명공학이나 반도체 등 다양한 연구활동이 이뤄지는공간인 빔라인의 연구실을 지켜보았다.

정찬우(서울 중마초6)군은 “가속기를 보려고 서울에서 일부러 기차를 타고 왔다”며 “이처럼 엄청난 크기의 연구시설은 상상도 못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물리학도를꿈꾸는 박진용(포항고 1)군은 “가속기가 어떻게 빛을 만들어내는가”를 질문하면서 진지하게 가속기를 견학하고 “가속기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가속기가 가동 중이어서 저장링 등을 직접 가 볼 수는 없었지만, 윤영빈(포항 제철동초 4)군은 “여기서 어떻게 과학실험이 이뤄지는지도보고 싶다”며 연구장치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견학에 이어 포항공대정보통신연구소에서 한국일보사와 과학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동원증권 ㈜ 팬택 과학기술부가 후원하는 월례 과학강연 ‘사이언스 어드벤처 21’ 제10회강연이 열렸다.

‘빛을 만드는 사람들–방사광가속기’를 주제로 포항공대 물리학과 고인수 교수가 강연했다.

세상이 무엇으로 구성됐는지를 설명하는 과학연구의연장으로 탄생한 가속기는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연구시설.

그러나 400여 청중은 가속기의 역사 및 쓰임새, 미래에 대해서 2시간 가까이 이어진 고교수의 강연에 몰두하며 가속기에 대한 신비를 벗겨나갔다.

가속기의 미래에 대한궁금증이 쏟아졌다. 박찬석(포항제철중)군이 새로운 개념의 가속기로 어떠한 아이디어가 있는지를 질문하자, 고 교수는 “가속기는 보통 진공상태이지만, 새롭게 구상되는 가속기는 플라즈마를 매질로 쓰는 것”이라며 “플라즈마에 충격파를 만들어주고 전자 등의 입자가 충격파를 타고 가속되면, 지름 1㎙만돼도 포항가속기 정도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고 답했다.

성균관대에 재학중인 신모(여)씨는 “가속기의 규모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데 무거운질량의 입자를 가속시키거나 속도를 크게 해서 보다 큰 에너지를 얻으면 되는 게 아닌가”라고 전문적인 질문을 던졌다.

고 교수는 “에너지가 높아질수록원형가속기 내에서 입자가 커브를 트는 데 드는 힘이 더 커지기 때문에 역시 지름이 커져야 하고, 우라늄 같은 무거운 입자를 가속하는 것도 방법이될 수는 있으나 해석이 어렵다”며 현재 기술상의 한계를 인정하고 생각의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강연 전에 가속기를 견학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던 유남규 전성완(동국대 전자공학과 2)씨는 “가속기 자체에 대한 것보다는 반도체 연구 등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가속기의응용분야에 관심이 많다”며 강연이 끝나자 포항방사광가속기로 향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주제강연' 고인수 교수

스스로를 ‘빛을 만들어 파는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사람. 바로 포항공대 물리학과 고인수(高仁洙ㆍ48) 교수이다.

포항방사광가속기의설립을 주도했고 가속기연구소의 연구원인 고 교수는 가속기가 만들어낸 빛, 방사광을 이용해 연구를 하지 않는다.

대신 빛을 만들어 상품으로 다른연구자들에게 판다. 방사광가속기 설립을 계획한 포항공대가 1988년 당시 전자통신연구원에서 근무하던 그를 스카우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내 가속기발달사의 중심에 서 있는 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 응용물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소립자물리학,플라즈마물리학, 컴퓨터시뮬레이션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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