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8월20일 러시아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가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암살됐다.그는 그보다 61년 전 옐리사베트그라드(오늘날의 키로보그라드)에서 태어났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의 군사적ㆍ이론적 지도자였다.레닌이 죽고 스탈린과의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뒤 트로츠키의 만년은 동가숙 서가식으로 이어졌지만, 그가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에 맞서 조직한 제4인터내셔널을 중심으로 그의 사상(트로츠키즘)은 강단 좌익 이론의 한 흐름을 이뤘다.
러시아 혁명기 멘셰비즘의 한 변종인 트로츠키즘은 20세기의 국제 마르크스주의 운동에서 레닌에 뿌리를 둔 볼셰비즘에 줄기차게 저항했다. 그 결과 좌익 내부에서도 트로츠키즘에는 극좌 모험주의ㆍ분열주의라는 낙인이 찍혔다.
트로츠키즘의 핵심은 영구혁명론인데, 1905년 혁명 과정에서 태어난 이 이론은 후진국에서의 영속적 혁명 추진, 프롤레타리아 권력 수립 이후 과도기 건설의 완수,국제적 규모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연속 추진이라는 세 테제를 줄기로 삼고 있다.
트로츠키는 레닌과 달리 러시아 혁명에서 농민의 역할을 부정했다. 중간 계급의 형성이 미약한 러시아에서 부르주아 혁명은 오로지 프롤레타리아를 통해서만 이룩될 수 있고, 일단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장악하면 국내외에 사회주의가건설될 때까지 권력을 유지하고 혁명을 영구히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트로츠키에 따르면, 가까운 장래에 세계 혁명이 일어나기 않는한 러시아의 소비에트 정권은 붕괴하든지 부르주아화할 것이었다. 말하자면 트로츠키에게 러시아혁명이란 조만간 서유럽에서 일어나야 할 사회주의 혁명의도화선에 지나지 않았다.
조직 문제에서도 트로츠키는 볼셰비키의 철의 규율에 반대하며 당내 민주주의(분파의 자유)를 요구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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