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벤처 1세대 기업들의 상반기 영업실적이 적자로 전환된 가운데 일찌감치 세계시장의 문을 두드린 벤처들의 선전이 눈부시다.대기업들조차 해외사업을 잇따라 철수하고 수출은 사상 유례없이 위축되는 상황이어서 이들의 도전정신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벤처 포화(飽和)국 한국에서엘도라도로 떠난 벤처들
포화상태에 빠져 과당경쟁이 불가피한 국내 시장에서 벤처들의 생존은 그야말로 ‘모험’이다. 예를 들어 보안 솔루션 업계의 경우 국내에 약 200 여 개의 벤처가 한해 2,000억원의 시장을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산술적으로 따져도 업체 당 고작 1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실제로는 2~3개 메이저 업체가 80% 이상의 물량을 독차지하고있어 후발 주자들은 발 붙일 곳이 없다.
중견 보안 솔루션 벤처 시큐어 소프트의 정진수(鄭眞秀ㆍ33) 마케팅팀장은 “보안솔루션만이 아니라 국내 IT 시장 전체가 한정돼 있다 보니 생존을 위해 해외로 나갈 수 밖에 없다”고말했다. 시큐어 소프트는 지난해 5월 미국 실리콘밸리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일본 , 중국 등에 사무소를 열어 올해약 20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전망이고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도 국내의 7~8배에 이른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
경쟁업체의 덤핑공세가 없어 국내의 몇 배 가격으로 물건을 팔 수 있는 매력도 벤처들의 해외 탈출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국내원격교육 기술의 선두주자 영산정보통신은 5월 홍콩의 빌리바라닷컴사에 원격교육 저작툴 ‘GVA Author’와 GVA 서버를 4만1,000달러(약 5,200만원)에판매했고 미국, 일본,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태국 등 10여개국에서 사이버대학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이 회사 박택균(朴宅均ㆍ39) 이사는 “국내에 비해 3~4배에 이르는 가격에 소프트웨어를 판매했지만이것이 제대로 된 가격”이라고 털어놨다.
5월 폴란드에 진출한 e-비즈니스 솔루션 개발업체인 하늘정보는 국내에서 시장성이 없지만 IT후진국에서는 통하는 기술의 수출로동구권 IT시장 공략을 노리고 있다. 하늘정보의 수출역군은 웹사이트 이동시 대기시간을 이용, 모니터에 광고를 보여주는 ‘HI-SPOT’. 초고속통신망이 일반화된 우리나라에서는 사이트 간이동시간이 짧아 수요가 없지만 전화선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동구권에서는 충분히 승산 있는 기술이다.
▦ 세계 최고를 노린다
올 6월 미국에 법인을 열어 벌써 50만 달러(약 6억4,000만원) 상당의 매출을 올린 국내 선두의 웹카메라 제조 벤처웹게이트의 해외진출은 세계 최대 시장에서 기술을 인정 받기 위한 것. “웹카메라는 막 태동단계의기술이기 때문에 서둘러 해외시장에 나서면 세계 선도기업이 될 여지가 크다”는 것이 웹게이트의 노림수다. 휴맥스도 상반기에만 디지털 위성방송 수신용 셋톱박스 8,400만달러 어치를 수출해 이 분야에서는 시스코, 주니퍼 등 세계굴지의 대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벤처기업들의 섣부른 해외진출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산업자원부 우태희(禹泰熙ㆍ40) 산업혁신과장은 “시장조사, 컨설팅 등 충분한 계획 없이 무턱대고 해외로나간 벤처들이 쓴 맛을 본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술우위에 대한 자부심 하나만믿고 시장여건이 자유로운 미국, 일본 등 선진국 바닥에 준비작업 없이 도전했다 낭패를 당한 벤처들도 부지기수. 심지어 현지 사업 파트너의M&A(인수 합병)나 도산으로 수십억대의 손실을 입은 탓에 국내 본사의 구조조정을 치른 업체들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벤처 마케팅 컨설팅사 이래CNC 오태동(吳泰東ㆍ46) 사장은 “현재 1만여개의 벤처들이 과열경쟁과 영악한 한국 자본시장의 논리 속에서 고사하고 있는데 2005년이면 5만 여개까지 늘어나 우리나라는‘벤처 지옥’이 될 전망”이라며 “벤처들의 생존 물꼬는어차피 우리나라보다 수백배 이상 큰 세계시장에 있다”고 조언했다.
김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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