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호 국도는 가을로 들어서는 길이다. 인천에서 출발해 강원 동해시까지 이어지는이 길은 태반이 강원도의 깊은 골짜기에 들어있다.특히 새말(횡성군 우천면)부터 동해항에 이르는 약 130㎞ 구간은 횡성-평창-정선-임계 등 아름답고구수한 산골마을의 정취에 젖는 길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그 풍광이 더욱 유혹적이다. 약 4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지만 길 가의 명소를 염두에 둔다면3박 4일도 모자란다. 백두대간의 가을 기운이 그 길에 내려서고 있다.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가을 마중을 나가 보자.
▽새말~평창읍(52.6㎞)
영동고속도로 새말 나들목으로 내려선다. 우회전, 442번 지방도로를 약500㎙ 진행하면 원주에서 달려오는 42호 국도를 만난다.
신호등이 없고 주변에 휴게소가 많아 복잡하니 진입시 주의. 길은 처음부터 경사가 심한산을 오른다. 치악산의 북동쪽 언덕이다.
왼쪽으로 오원저수지의 물빛을 감상하면서 언덕을 넘으면 안흥(횡성군 안흥면 안흥리)이 나타난다.
안흥은 ‘먹는 장사’의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마을. 가난한 농촌마을에서 찐빵 하나로 강원도 최고의 관광마을로 도약했다.
원조집은 ‘안흥찐빵집’(대표 심순녀ㆍ033-342-4460). 동네사람이 주고객이었던 찐빵이 관광객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면서 1998년부터 찐빵집이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
이제는 마을 전체가 찐빵마을이 됐고 지난 해 10월 특허청에 상표등록까지 마쳤다. 이스트를 쓰지 않고 막걸리로 반죽을발효시키는 안흥찐빵은 식혔다가 다시 찌더라도 쫄깃한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 특징. 기름에 튀기면 별미이다.
빵을 사기 위해 관광버스가 줄을 서 있는 기이한 풍경을 보면서 안흥마을을 지나면평창군이다. 아름다운 계곡이 나타난다. 뇌운계곡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평창읍에 속하지만 방림면 방림리에서 진입한다. 평창강의 본류이다. 완만한맑은 물과 하얀 모래톱이 아름답다. 입구의 합천소부터 5㎞쯤 이어지는데 올 여름에는 약 1만 명의 피서인파가 다녀갔다.
방림리 끝에서 길은 31호 국도와 만나 평창읍까지 함께 한다.
▽평창~정선(34.5㎞)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마의 구간이었다. 멧둔재와 비행기재라는 걸출한 언덕 때문이었다.비포장인데다 굴곡이 심해 경험이 많은 운전자도 혀를 내둘렀다. 이제는 두 언덕에 모두 터널이 뚫려 쉬워졌다.
맷둔재를 넘어서면 미탄마을(평창군 미탄면 창리). 동강래프팅으로 유명한 곳이다.동강을 지나칠 수 없다. 창리를 지나 약 3㎞를 더 가면 오른쪽으로 ‘동강’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시멘트포장과 비포장이 뒤섞인 길을 5㎞쯤 들어가면 마하리이다. 동강의 중상류인 이 곳이 래프팅의 출발지.
고무보트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인파도 만만치 않다. 대규모 군부대를 방불케 한다. 작전을 수행하는 해병대처럼 배를 타고 출발하는 사람들의 얼굴에환하게 웃음이 번진다.
동강에서 나와 광하리(정선군 정선읍)를 지나면 정선읍이다. 길은 돌산의 옆구리를타고 돈다. 짧지만 아름답다.
절벽 아래 조양강이 흐르는 모습이 압권이다. 길 양쪽에 차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정선~임계(40㎞)
볼 것과 즐길 것이 가장 많은 구간. 날짜가 맞는다면 정선장을 들러 보자. 끝자리2, 7일에 장이 선다. 30여 년 전부터 서기 시작한 정선장은 역사가 그리 깊은 편은 아니다.
규모도 보잘 것 없다. 그러나 깊은 산에서 나는진귀한 산물이 집합하는 곳이기 때문에 도시 사람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가을에는 온갖 약초가 좌판을 덮는다.
꼬마열차가 명물이다.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비둘기호다. 평소에는 정선역에서구절리역까지 하루 두 차례만 운행한다.
운전자만 구절리역까지 차를 몰고 나머지 일행은 열차여행을 해 봄직하다. 푸성귀 보따리를 안고 조는 시골아낙, 문에 매달려 바람을 맞는 통학생, 막걸리에 얼큰해진 촌로의 웃음 등. 구간은 짧지만 농촌의 서정에 흠뻑 젖을 수 있다.
정선읍에서 아우라지까지 가는 약 20㎞ 구간은 조양강과 함께 하는 강변길. 현지차량의 과속운행에 신경만 쓰지 않는다면 강의 아름다움에 푹 빠질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다.
중간 지점에 왼쪽으로 88번 지방도로가 나 있다. 평창군진부로 가는 길이다. 오대천을 끼고 가는 이 길은 또 하나의 강변 드라이브길이다.
아우라지는 골지천과 송천이 만나 조양강이 되는 곳. ‘정선아라리’의발상지이다. 너무 알려진 탓에 사람의 때가 많이 탔다.
아우라지 진입로로 계속 달리면 구절리역. 약 4㎞를 더 들어가면 강릉시와 맞붙어있는 종량동이다. 종량동 직전에 오장폭포가 있다. 하늘에서 바로 떨어지는 듯한 모습이다.
■ 임계~동해시 효가동 4거리(39㎞)
42호 국도 여행의 하이라이트. 가장 험하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다. 백복령을넘는다. 백복령은 한꺼번에 올랐다가 한달음에 내려가는 일반적인 백두대간의 언덕과는 다르다.
급하게 오른 뒤, 산의 8부 능선을 끼고 한참을 달리다가다시 급경사를 내려간다. 낙석지대가 많으니 조심운전 필수.
백복령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달방저수지가 보인다. 동해,삼척시의 식수원인 저수지로 투명한 물빛을 자랑한다.
조금 더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무릉계곡 이정표가 보인다. 국민관광지 1호인 무릉계곡은 두타산과청옥산의 골짜기.
고찰 삼화사 등 많은 불교유적을 품고 있는 계곡이다. 하얀 바위를 흐르는 청정수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입구의 무릉반석에서용추폭포까지의 구간이 가벼운 트레킹에 제격이다.
여행의 종착지는 바다이다. 효가동 4거리에서 직진하면 동해항, 오른쪽으로 돌면추암, 좌회전해 한참을 달리면 망상해변에 닿을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추암해변은 일출의 명소. 무릉계곡쯤에서 1박을 했다면 해 뜨는 시간에 맞춰추암해변에 나선다. 촛대바위 뒤로 떠오르는 찬란한 기운에 여독이 말끔히 사라질 터이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먹으면서 갑시다
강원도의 맛은 한마디로 밋밋하다. 외지인의 입맛을 노골적으로 유혹하지 않는다. 대신 은근하고 깊다.
그래서 장복(?)할 경우 깊이 빠진다. 52호 국도 주변에는 구수한 강원도의 맛이 널려있다. 이제 햇곡식이 나오면 그 구수함이 더욱 진해질 것이다.
▽백조막국수집(평창군 대화면 대화9리ㆍ033-333-2280)
구체적인 정보 없이 여행지에서 맛있는 집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주차장에차가 많이 서 있는 집을 택하는 것이다.
특히 현지 주민의 차가 많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백조막국수집은 손님의 대부분이 현지 주민이다.
면사무소, 파출소 직원은 물론 논두렁장화를 신은 농군들이 찾아와 주인과 “형님, 동생”하며 막국수를 먹는다. 막국수의 고장 평창에서 맛을 인정받은 집이다.
평창에서 수확한 메밀을 반죽해 직접 면을 뽑는다. 면을 입에 가져갈 때부터 구수한메밀 냄새가 코를 지나 눈까지 올라온다.
눈을 지그시 감을 수밖에. 함께 상에 내는 톡 쏘는 맛의 갓김치도 일품이다. 52호 국도가 아니라31호 국도변에 있다.
방림 3거리에서 좌회전해 약 10㎞를 북상하면 된다. 대화면 우회도로를 타면 오른쪽으로 간판이 보인다. 허름한 집이어서 처음에는 식당인지 농가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막국수 3,500원.
▽동광식당(정선군 정선읍 봉양5리ㆍ033-563-3100)
정선의 대표적인 먹거리는 콧등치기국수. 메밀을 재료로 한 칼국수이다. 너무 맛이있어 후루룩 먹다보면 굵은 면발이 콧등을 친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 동광식당은 정선읍내에서 콧등치기국수로 가장 유명한 집. 1992년 개업해올해로 10년째를 맞는다.
이 국수의 특징은 된장을 풀어 국물을 낸다는 점. 멸치와 된장으로 우려낸 국물에속껍질째 갈아 만든 메밀면을 삶고, 호박 우거지 등을 얹어서 낸다.
냉면 사발만한 그릇에 넘칠 정도로 담고 옆에 공기밥까지 한 그릇 곁들여 상을차린다. ‘양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걱정은 잠시.
구수한 면과 국물맛에 콧등을 적시며열심히 먹다 보면 국수그릇과 밥그릇이 어느새 비어있다. 콧등치기국수 4,000원.
황기를 넣고 삶은 황기왕족발도 이 집의 명물. 향긋하고 쫄깃쫄깃한맛이 일품이다. 1만 5,000~1만 8,000원.
손님이 많으면 국수 끓이는 시간이 늦어진다. 차량편 등 시간이 빡빡하다면 미리사정을 알아보아야 한다. 정선역 옆골목 정선제일교회 앞에 있다.
▽굴뚝새(동해시 삼화동 033-479-5ㆍ534-9199)
대나무밥(대나무 속에 쌀과 잡곡을넣고 지은 밥)은 원래 전남 지방의 음식. 대나무가 굵은 담양이나 지리산 자락인 구례, 청학동 등에서 맛볼 수 있다.
굴뚝새는 강원도에서 대나무밥을구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집. 주인은 지리산 청학동 등 본고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조리법을 익혀 두타산 자락에다 식당을 열었다.
담양에서 가져 온 대나무에 율무,좁쌀, 수수, 콩, 은행 등을 쌀과 함께 넣어 가마솥에 안친 뒤 한 시간 가량을 장작불로 찐다.
대나무밥에 전골류를 한가지씩 곁들여 1인분에 1만 원이다. 전골은 버섯, 곱창, 낙지전골 중 손님이 선택할 수 있다.
진입로가 까다롭다. 무릉계곡으로 들어가는 삼화마을과 쌍용양회 정비기지를 지나 우측도로를 타고 300㎙쯤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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