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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일본의 ‘초라한’ 2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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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일본의 ‘초라한’ 21세기

입력
2001.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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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21세기는 왜 이처럼 초라하게 열리는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나오는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모습은 희화적이다.국내외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침내 참배를 결행했다는 그의 장엄한 표정은 세계인들로 하여금 고소를금치 못하게 한다. 21세기 일본의 첫 총리는 구시대의 향수(鄕愁)에 젖어 미래로 가는 방향을 잃고 있다.

지난 4월 고이즈미가 선풍적인 인기 속에 일본의 새 총리가 되었을 때 우리는기대 반 불안 반의 시선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장기간 계속된 경기침체와 정쟁에 지친 일본인들이 고이즈미라는 ‘파격적인’ 인물에 거는 기대를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파격’의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취임 초에 치솟는 인기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한 우리의 눈에고이즈미의 높은 인기는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성과 후생성 장관을 지낸 10선 의원이니 참신한 정치신인은아니다. 그러나 판에 박힌 정계 인물들 속에서 ‘튀는 언행’으로 화제를 모아 온 그에게 일본인들은 신선함을 느꼈다.

파마로 웨이브를 넣은 헤어스타일, 이혼한 후 20여년에 걸친 독신생활, 거침없이 내뱉는 독설 등도 그의 신선한 이미지에보탬이 됐다.

그는 개혁성향의 인물이지만, 역사인식에서는 강경 우파였고, 총리로서 이 두가지 성향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가 세계의 관심사였다.

그가 총리가 되자 세계의 매스컴은 ‘일본은변화를 택했다’고 보도했다. 어떤 변화인가. 머리에 기름을 발라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언행을 신중히 하는 전통적인 이미지의 정치인들 속에서 ‘사자머리’를 한 ‘튀는 정치인’을 선택했다는 것이 변화인가. 우리는 당연히 그 이상의 변화를 기대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취임 후 좌충우돌의 몇가지 에피소드를 남겼을 뿐 확실한 변화의방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 야스쿠니 참배였으니‘변화’를 주시해 온 사람들이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는 종전 기념일인 15일을 피해 13일 기습적으로야스쿠니를 참배하면서 담화문을 내놓았는데, 그의 뜻이 무엇인지 오리무중이다.

…일본은 과거 잘못된국책으로 근린제국에 대해 헤아릴 수 없는 참해와 고통을 주었다…곤란한 시대에 조국의 미래를 믿고 전진에 흩어졌던 영령들 앞에, 오늘의 일본이 그들의 존귀한 희생 위에서 세워졌음을 생각하며 매년 평화에 대한 맹세를 새롭게 해 왔다…총리가 발언을 철회하는 것은 참괴(慘槐)한 일이다.

지금은 광범위한 국익을 포함해 일신을 던지는 내각총리로서의 직책을 수행해야 한다. 나는 가능한 빨리 한.중 주요인물들과 아시아 태평양의 미래와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담화문은 ‘과거 일본의 잘못’과‘조국을 위해 희생된 영령들에 대한 추모’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대화’를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열거한 것들을 위해서 2차대전 전범이 합사 된 야스쿠니를 참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그는지난 2월 2차 대전 중 자살공격을 감행했던 가미카제 기념관을 방문하여 눈물을 흘렸으며, 그 어린 희생자들에 대한 동정심이 이번 야스쿠니 참배를강행한 한 이유였다고 한다.

가미카제를 죽음으로 내 몬 전범들에 대한 참배와 가미카제에 대한 동정심이 어떻게 고이즈미의 역사인식 속에서 평화롭게공존하는지,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없다.

일본은 구시대의 가치로 새 세기를 열고 있다.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일본인들의 기대속에 등장한 총리는 21세기로 나아가지 않고 지난 세기의 행진곡에 맞춰 야스쿠니로 가고 있다.

소니와 혼다와 포케몬에 익숙한 세계 소비자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우물 안 개구리’ 의 행진! 그것이만화의 대상인지 논평의 대상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발행인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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