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대학 1학년인 양희은은 통기타를 메고 노래를 불렀다. 트로트가 주류이던시절,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선 그를 ‘이단아’와 함께 공연할 수 없다며 거부하는 가수들도 있었다.젊은 세대들은 그의 맑고 또렷한 목소리, 무엇으로도 꺾어 버릴 수 없을 것 같은 옹골참에 열광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이러이러한 노래로 사람들을 사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꼭 30년이 지나 양희은(49)이 다시 한번 그 노래들을 부른다. 31일부터 9월2일까지 사흘동안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양희은 30’. 그의 데뷔 30주년 기념콘서트다.
‘숫자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그는 30주년에 큰 의미를 둘 생각은 없다. 늘 하던 대로 7년째 손발을 맞춰온 4명의 백 밴드와의 노래와 약간의 이야기가 전부다.
20여 곡의 레퍼토리 중 대부분은 ‘아침이슬’ ‘이루어질 수 없는사랑’ ‘한계령’ 등 지난 30년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들이다.
굳이 색다른 것을 꼽자면 공연장의 규모를 고려해 15인조 남성 합창단과 1978년 ‘밤배놀이’로 만났던 국악인 김소연씨를 초청했다는 것.
또 그가 아끼는 노래 중 하나인 ‘백구’를부를 때 ‘개가 있는 따뜻한 골목’이란 사진집을 낸 김기철씨의 작품들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3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양희은에게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30년전 양희은은 청년문화의 상징이었다.
그가 부르던 ‘아침이슬’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세노야’ 등은 그가 의도했던 안했던 젊음, 자유, 반항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중년, 특히 ‘아줌마’들의 대변인을 자처한다. “먹고살기 바빠 음악을 잃어버린 사람들, 무엇보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여러 장의 CD를 사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단한 장의 음반을 살 여유도 없는 여자들을 위해” 노래한다.
말하자면 그는 동년배의 사람들을 위해30년째 노래를 부르고 있는 셈인데, 양희은에게는 너무 자연스런 일이다. “노래는 그 세대의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또래문화’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잖아요.
1970년대에 10대,20대의 노래를 했다면 이제는 40대, 50대의 노래를 하는 거죠. 내가 아줌마인데요, 뭘.”
양희은은 그 나이의 사람들이 공연 한번 보러 오려면 얼마나 큰 마음을 먹어야하는지 잘 안다. 때문에 수 천번도 더 부른 노래들이지만, 어느 곡 하나 소홀히 하지 못한다.
그는 또 사람들이 자기 공연에 추억을 기대하고 온다는것도 안다. 세대를 묶어주는 공감으로서의 추억은 늘 소중하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추억 이상의 무엇을 그들에게 주고 싶어한다. “좁은 골목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을 수 있는 노래, 다만 10분이라도들으면서 편하게 단잠을 잘 수 있게 해주는 노래”를 주고 싶다.
그것이 그가 30년 동안 받아온 사랑에 대한 보답이고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는 동년배들을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때문에 그는 대부분의 ‘추억의 스타’와는 달리 지금도 새 작업을 포함, 1년에 8개월은 노래연습을 한다.
30년 전 ‘그때 그 노래’ 뿐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들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다.
그 노래들 역시 R&B나 힙합 등 요즘 유행하는 음악은 아니지만 자신이 좋아하고 고집스러울 만큼 명징하며 듣는 이를 묘하게 잡아 당긴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의 새 노래 3곡을 들을 수 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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