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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朴玄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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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朴玄埰

입력
2001.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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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16일 경제학자박현채가 타계했다. 향년 61세.박현채는 혁명과 반동으로 소란스러웠던 20세기 한국에서 진보적 지식인의 삶을 전형화했다. 광주 서중학교때 6ㆍ25를 맞은 그는 지리산에 들어가 두 해 동안 빨치산 활동을 했고, 복부관통상을 입어 하산한 뒤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모교에서의 강사생활을 시작으로 학자의 길로 들어섰지만, 1963년인혁당 사건에 연루되면서 재야로 튕겨져 나갔다.

1989년 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취임하기까지 박현채는 제도권 바깥에서 감옥을 들락거리며 그나름의 경제 이론을 수립하는 데 몰두했다. 그의 경제학은 ‘민족경제론’이라고 불린다.

그가 1978년에 낸 책의 제목이기도한 ‘민족경제론’이란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민족경제를 민족의자주, 민주주의, 민족통일과 역사적 진보의 경제적 기초로 만들기 위한 시각을 가지려는 노력으로 정립된 이론”이다.

박현채가 보기에 민족적인 것은 민중적인 것이고 민중적인 것은 민족적인 것이다. 민족적인 것이 민중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것은 “우리 조국의 신식민지적 상황과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로의 전이에 따른 모순 관계의 단순화”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민족경제론은 민중경제론이기도 하다.

박현채가 대학 시절 한국 농업문제연구회활동을 하며 씨앗을 뿌린 민족경제론은 한국 자본주의가 종속 심화, 독점 강화의 길로 들어서던 시기에 민족과 민중을 포개면서 움을 틔웠고, 그 뒤현실의 민족민주 운동 속에서 몸을 불리고 가지를 치며 자라나 진보적 경제학의 상징어가 되었다.

그것은 외세를 배제하고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민주적자립 경제를 내세움으로써 자본주의 세계 경제 하에서 한국 국민경제의 독자적 존재 가능성을 제시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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