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경기 고양시 덕양구화정동 판화작가 남궁 산(40)씨의 작업실. 목판 채색 작업으로 물감 냄새가 코를 찌르는 이곳에서 그는 얼마 안 남은 개인전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땀을 흘리고 있었다. 22일~9월 16일 서울 인사동 학고재(02-739-4937)에서 열리는 16번째 개인전 ‘생명, 그 나무에 새긴 노래’이다.그는 거칠고 전투적인 목판화가 대세였던 1980~90년대 미술계에서 ‘부드럽고 친근한’ 작품을 고집했던 몇안 되는 작가였다.
유홍준 영남대 교수는 그의 작품을 ‘조선 화투짝 그림’이라고 말했고, 소설가 윤대녕은 ‘세 평 남짓한 텃밭의 풍경’이라고 평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새는 늘 웃고,꽃은 고향 언덕에 피는 예쁜 복사꽃이다.
“80년대 말 전교조 사업단에서 일할 당시 미술의 대중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었습니다. 진정한 ‘민화’란무엇일까, 그런 고민이었죠.
미술이 대중과 따로 노는 현실, 난해함을 최고로 치는 유치한 아카데미즘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최소한 내 그림만큼은 상처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전시작 60여 점 역시이러한 그의 미술관이 녹아있는 작품들이다. 잘려나간 그루터기에도 새싹은 돋아나고(‘생명-마음의 그루터기’), 밤 길에도 함께 있기에 외롭지 않다(‘생명-아름다운 동행’)는 메시지다. 천진난만한 고 장욱진 화백의 그림이연상되는 작품들이다.
요즘 그의 관심은 책 소장자를 표시하기 위해 겉장에 붙이는 목판화 ‘장서표(藏書票)’다. 95년 국내 처음으로 장서표 개인전을 가질 정도로 애착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시인 신경림씨, 미술평론가 윤범모씨, 민중미술가 성완경씨 등 100여 명에게 이 장서표를 만들어 선물했다.
“91년 처음 조선족 판화 작가의 장서표를 접하는 순간 판화의 새로운 쓰임새를 발견했습니다. 손바닥 크기의 장서표야말로 더욱대중과 가까워질 수 있는 미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든 자신이 아끼는 책에 붙일 수 있는 판화가 바로 장서표인 것이죠.”
자신의 스승은 외국 작가 마르셀뒤샹이 아니라, 조선의 이름 모를 무수한 화공이라고 강조하는 남궁 산씨. 그는 ‘미술과 대중의 거리좁히기’를 최고의 화두로 삼는 작가임이 분명하다.
김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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