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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대물림하는 친일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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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대물림하는 친일재산

입력
2001.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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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당사자들의 행적 연구는 상당히 진전된 상태이지만 이들이 어느 정도의 재산을 남겼고 어떤 과정을 거쳐 후대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성과는 미진하다.프라이버시 침해 소지 등으로 민감한 사안인데다,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자료의 상당 부분도 사라졌기 때문.

민족문제연구소(소장 한상범ㆍ韓相範ㆍ동국대 교수)가 펴낸 ‘친일파 99인’을 살펴 보면 대표적 친일 인사의 후손들이 선친의 친일대가로 얻은 유·무형의 재산을 기반으로 정ㆍ재계, 교육, 언론, 법조계 등 각 분야에서 기득권층으로 확고히 자리잡았음을 볼 수 있다.

해방 후 일제 부역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민특위가 이승만(李承晩) 정권에 의해 해체되면서 역사의 첫 단추가 잘못 꿰인 것.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이만열ㆍ李萬烈ㆍ숙명여대 교수)가 2004년 완간 예정인 친일 인명록에는 모두 3,000여명이 수록될 예정인 데, 이 가운데 상당수의 재산이 환수되지 않고 후대로 이어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 직접적으로 재산을 물려받지는 않았더라도 친일파 후손의 상당수가 유복한 환경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아 상대적으로 유리한 기회를 보장 받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친일파가 남긴 재산 규모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계기는 1997년 이완용(李完用)의 증손자 윤형(允衡ㆍ67ㆍ캐나다 거주)씨가 증조부의 일부 재산을 소송을 통해 되찾고 제3자에게 되팔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였다.

임대식(林大植) 역사비평사 편집주간의 조사에 따르면 이완용은 선영인 충남 아산의 대지를 비롯해 전국 40여곳에 수백만평의 땅을 소유했다.

이완용 사망 직후 그의 작위와 재산은 유일한 상속권자인 차남 항구(恒九)씨가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장손 병길(丙吉)씨에게 상속됐다.

병길씨는 1932년 당시 시가로 50만원 이상 재벌 명단에 올랐고 일제 말기까지 10만원 이상의 국방금품 헌납자 명단에 오르는 등 막대한 재산을 소유했다. 병길씨의 재산은 반민특위에 의해 절반이 몰수됐지만, 학계에서는 여전히 상당 규모의 이완용 땅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진회를 주도한 송병준(宋秉晙) 역시 마찬가지. 국내에 현재 시가로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방대한 토지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병준은 특히 일본 정부로부터 훗카이도 땅 560만평(여의도 2.2배)도 ‘하사’받아 목장을 경영했으며, 이 목장은 아들에게 상속돼 한 때 손자(1976년 사망)가 이주해 살기도 했다.

올 초에는 친일 대가로 남작 작위를 받은 이재극(李載克)의 손자 며느리가 시할아버지의 재산을 되찾는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종전 법원은 친일파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는 입장이었다가 이번 판결에서 처음으로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재산은 헌법 정신에 어긋나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려 주목을 받았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方學珍) 사무국장은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의 후손이 오히려 영화를 누리는 현실이 우리 사회에 결과지상주의, 기회주의, 출세주의 등을 만연케 하는 심각한 해악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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