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과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한경연은 13일 보고서에서 “한은이 기껏 콜금리를 0.25% 낮추더니 통화안정증권(통안증권)으로 유동성을 거둬간다”며 현 통화ㆍ금리정책이 일관성 없이 완화(콜금리인하)와 긴축(통안증권 발행)이 뒤범벅됐다고 비판했다.한은은 이에 발끈, “통안증권은 콜금리가 목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만큼만 발행되는 것”며한경연이 통화운용 메커니즘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박자료를 배포했다.
시비를 가리기에 앞서 이 흥미있는 논쟁을 관전하려면 통안증권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통안증권이란 문자 그대로 통화량 안정을 위해 한은이 발행하는 채권이다. 시중에 돈이 너무 많아 금리가 낮다고판단되면 한은은 금융기관에 통안증권을 팔아 시중자금을 빨아들인다. 반대로 돈이 너무 적어 금리가 높다고 생각되면 통안증권을 되사들이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게 된다.
이처럼 채권매매로 통화ㆍ금리를 조절하는 것(공개시장조작)은 중앙은행의 가장 기본적 기능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통화관리용 채권을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많지 않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정부발행채권, 즉 국채를 이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자다. 통안증권 잔액은 약 74조원으로 한은은 상반기중 이자로만 2조5,000억원을 지급했다. 통안증권이자지급을 위해 돈을 찍고 그 돈을 환수키 위해 통안증권을 또 발행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결국 통안증권 자체가 중앙은행의 적(敵)인 인플레압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채도 이자는 있지만 국회심의 등엄격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다, 이자부담이 발권력 아닌 재정의 몫이기 때문에 중앙은행 스스로 통화증발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통안증권보다는통화관리 취지에 더 맞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미 통안증권의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그렇다면 아예 통안증권을 국채로 바꿔버리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순식간에 나라 빚(국채)이74조원이나 늘어나게돼 여론이나 정치권이 가만 있을 리 없다. 통안증권이 골치거리이면서도 당분간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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