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14일 전격 참배함으로써 이 곳에 함께 안치된 한국인 희생자 2만1,118명의 위패 반환 문제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현재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 추진협의회와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협의회 등 징병ㆍ징용피해자 단체들은 광복절을 앞두고 일본에서 위패반환과 보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치고 있다.
매년 유족들이 간헐적으로 일본을 찾아 다니며 울부짖을 때 우리 정부는 야스쿠니 신사에 한국인 희생자들이 합사(合祀)된 사실을 알고도 위패반환 등을 위한 아무런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금이라도 범 정부 차원의 대책반을 구성, 체계적인 일제 침략기 피해 조사와함께 민간 차원의 합사 취소 소송이나 손해 배상 소송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무책임한 정부
정부는 1993년10월 일본으로부터 1941~45년 강제 징용ㆍ징병된 24만3,992명의 한국인 징용자 이름과 본적 등 상세한 신상내용뿐 아니라 소속 부대 및 야스쿠니 신사 합사 여부, 공탁금 일련번호까지 기재된 ‘징용자 명부’를 돌려 받고도 정부기록보존소에 8년이나 방치한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정부는 지난 6월29일 피해자 유족 55명이 일본정부에 합사 중지 및 위자료 지급 등을 요청하는 탄원을 제기하자 마지 못해 일본측에 합사자 명단 요청과 삭제요구를 했지만 일본을 압박하거나 우선적인 합사 취소를 요청할 수 있는 관련 자료로 쓰일 ‘징용자 명부’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주무 부서인 외교통상부는‘정부가 합사 표기를 몰랐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합사 여부가 기재된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명단을 파악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 징용자 명부와는 엄연히 다른 합사자 명단을 요청한 것이므로 문제될 게 없다”며 발뺌했다.
또 “24만 명이 넘는 징용자 명부를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명부를 정부기록보존소에 이관했으므로 행자부 소관사항”라고 떠넘겼다.
보관중인 명부의 기초적인조사도 하지 않고 개인정보 유출 등을 이유로 유족 외에는 명부의 공개를 꺼린 행정자치부도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행자부는 93년 외교부로부터 명부를 받은 뒤 5개월에 걸쳐 색인부 작업에 들어갔지만 색인부에는 희생자의 일본식 이름과 본적만 표시됐을 뿐 합사 여부와 공탁금 일련번호는 아예 실리지 않았다.
정부기록보존소 관계자는 “주무부서인 외교부에 정리작업을 구두로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당시 시간에 쫓긴데다 합사와 공탁금 일련번호의 중요성은 미처 알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 분노하는 유족들
가족의 합사 여부는 고사하고 명부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유족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황대경(黃大慶ㆍ70)씨는 “이번에 명부를 통해 선친의 사망 사실을 알았다”며“평생 선친의 기일(忌日)도 모르는 불효를 저지를 뻔 했다”고 탄식했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공동대표 이종진ㆍ李種鎭) 등 유족들은 정부기록보존소의 까다로운 명부 열람 과정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창씨개명 당시의 제정증명 등 관련서류를 제출하지 않으면유족들도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
선친의 생사 여부도 알지 못하는 이금수(李今壽ㆍ59ㆍ여ㆍ서울 강북구 번동)씨는 “정부기록보존소측이 대부분노령인 유족들에게 까다롭고 불친절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행자부는 “서울ㆍ부산ㆍ대전 기록보존소를 찾아오지 못할 경우 우편신청을 받는등 유족들의 편의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며 “곧 색인부를 보강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관련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정부차원 대책마련 시급
전문가들은 정부의합사 취소 의지가 확실하다면 범 정부 차원의 대책반을 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익표(池益杓) 변호사는 “정부가 소송에 직접 나서지는 못하더라도소송에 참가한 자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적 의무”라고 말했다.
피해자협의회 김은식(金銀植) 사무국장은 “합사 취소 소송 과정에서 유족개인이 오랜 기간 자료를 모으다가 소송 전에 사망한 경우도 있다”며 “명부 정리와 공개, 일제 징용ㆍ징병의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위원회를 설치해야한다”고 촉구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윤대규(尹大奎) 부소장은 “정부가 명부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부 역량의 부족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며 “유족회 등 민간단체가 참여하는 관련기관간 대책반을 구성해 유족들의 소송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장완익 변호사
“1965년 한ㆍ일 협정이후 뒷짐만지고 있는 정부에 더 이상 피해자 보상문제를 맡길 수 없었습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소송’의 한가운데에는 장완익(張完翼ㆍ38ㆍ사시29회ㆍ사진)이라는 386세대 변호사가 있다. 그가 수행하는 소송만도 위패반환, 유골반환, 생사확인, 미불임금 반환, 공탁금 반환, 군사우편적금 반환 등 10여건.
2년차 햇병아리 변호사 시절이던 94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을 시작으로 일본 정부와 ‘법전(法戰)’을 선포한 그는 “피해자나 시민단체의 힘만으로는 일본 정부에 이기는 싸움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법률분과위원으로 일하던 그는 지난해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로 취임한 뒤같은 해 12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여성 국제전범법정’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히로히토(裕仁)일왕에 대해 사상 처음으로 유죄판결을 내린 것으로 유명한 이 법정에서 공동검사단의 일원으로 북한측 인사와 함께 공소장을 작성한 것.
“‘태평양전쟁 소송’의 핵심쟁점은민족적 인격권이라는 새로운 법적권리 개념에 대한 일본 사법부의 수용 여부입니다.”일본이 강제 징병ㆍ징용이라는 불법행위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신체적ㆍ재산적손해를 끼쳤고 이후에도 적극적인 회복조치를 취하지 않아 타 국민들의 인격과 가치를 훼손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러한 논리를 특히 “야스쿠니(靖國)신사에 합사된 위패반환 소송에 적용했다”고 밝혔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돼있어 정부가합사를 철폐할 권한이 없다”는 일본 정부의 일관된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일본이 전후에 합사 명단을 작성, 야스쿠니 신사에 전달한 사례를 근거로일본 정부의 신사 관리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기 위해서는개별 소송보다 한ㆍ일간 외교 협상이 현실적으로 효율적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무성의가 무엇보다 아쉽습니다.”
손석민기자
ermes@hk.co.kr
■태평양전쟁 한국인피해 보상 소송
일본 정부를 상대로 태평양전쟁 한국인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은 지금까지 60여건에 달한다. 하지만 이중 승소한 사례는 1972년 원폭피해자인 손진두씨가 일본에 밀항,한국인 피해자도 일본 피해자와 같은 수준의 치료를 받게 해달라는 소송이 유일하다.
태평양 전쟁 관련소송은 미불 임금 반환, 유골 반환, 정신대 문제 등 워낙 복잡하고 피해자 개인이 개별적으로 낸 소송이 많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조차 힘들지만 소송의 기각 사유는 대부분 ‘1965년 한ㆍ일협정’과 맞물려 있다. 일본은 끊임없이 제기되는 한국인 피해 보상 소송에 ‘협정으로 배상의무는 모두 끝났다’는 논리를 들이밀고 있다.
91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가군인ㆍ군속 생존자와 유족, 위안부 원고 40명을 모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아시아-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보상 청구소송’은 10년을 끌다가 올해 3월 기각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공동대표이종진ㆍ李種鎭) 회원 등 252명의 대규모 원고인단이 6월29일 일본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재한군인ㆍ군속 보상청구소송’은 지금까지 제기된 피해소송의 결정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소송에서 원고인단은 ▦ 야스쿠니(靖國) 합사 철폐 ▦ 유골 반환 ▦ 생사 확인 및 사망 통지 ▦ 손해배상등 종합적인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고 청구금액만 24억 엔에 이른다. 원고인단의 구성도 미불임금이 남은 생존자 및 유족, 야스쿠니 합사 확인 유족,시베리아 억류포로, BC급 전범 등 다양하다.
계속되는 소송이 모두실패로 끝나자 피해자 협의회 등 관련단체는 일본의 비양심적 태도를 비난하면서도 정부의 무성의를 비난하고 있다.
91년 사할린 동포의 위자료청구소송을 맡았던 지익표(池益杓) 변호사는 “일본은 자국의 군인뿐 아니라 군견의 유골까지 수집해 모시고 있는데 한국인 징용ㆍ징병자 유골의 반환은 커녕 어디에 있는지조차 밝히지 않고 우리정부 역시 이를 외면하고 있다”며 “한일협정에 발이 묶여 자국민의 뼈아픈 과거사를 챙겨주지 못하는 정부가 과연 자주국가인가”라고 반문했다.
피해자 협의회 김은식(金銀植) 사무국장도 “정부가 소송 지원에 나설 수 없다면 국회가 나서 피해자 진상 규명 작업과소송 지원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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