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자 강준만(45ㆍ전북대 교수)씨와 문학평론가 권성우(38ㆍ동덕여대 교수)씨의글쓰기에는 닮은 데가 있다.우선 이들의 글은 정직하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속생각을 그대로 글로 옮긴다. 그게 무슨 별난 일이냐고 되물을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문필가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글로 옮기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전략전술적 고려와 이해 타산은 문필가로하여금 흔히 속마음을 그대로 글로 옮기기를 어렵게 만든다.
이럴 때, 정직한 글쓰기란 용기있는 글쓰기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강준만씨와 권성우씨를용기있는 문필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둘째, 이들의 글쓰기는 흔히 비판적 글쓰기라고 불리는 카테고리 안에 있다. 이들의글이 교차하는 것은 특히 지식인 비판의 영역에서다.
권성우씨는 글쓰기의 초기부터 비평에 대한 비평 곧 메타 비평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고, 강준만씨역시 자신이 주관하는 ‘인물과 사상’을 통해서 일종의 지식사회학이라고 할 만한 담론 비평활동을 열정적으로 펼쳐왔다. 이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최근 몇 해 동안 지식계 일각을 달군 문학권력 논쟁에서다.
문학권력 논쟁에서 두 사람은 크게 보아 같은 캠프 안에 있다. 두 사람 다 문학장안의 소수자를 옹호하고, 기존 문학권력의 보위와 재생산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것은 이 두 사람이 문학권력의 주요 산실인 문학저널리즘을 비판의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뜻이고, 그래서 기존의 문학저널리즘과 불화를 겪고 있다는 뜻이다.
그 불화는 강준만씨에게는 전면적이었고, 권성우씨에게는 부분적이었다.
이 두 사람이 문학권력 논쟁에서 늘 같은 목소리를 내온 것은 아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강준만씨는 문학권력의 맥락이나 지형을 더 중시했고, 권성우씨는 그런 것들을 고려하면서도 비평적 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의 사실 규명에더 천착했다. 그 과정에 상호 비판도 있었다.
최근에 나온 ‘인물과 사상’ 19호에는 권성우씨에 대한 강준만씨의 글 두 편이 실려 있다. 일종의 비판적 권성우론인 셈인데, 원래는 하나의 글로 썼던것을 분량이 많아 둘로 나누었다고 한다.
이 글들은 권성우씨에 대한 짙은 연대의식을 바탕에 깔면서도, 글쓰기에서 ‘감정드러내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비판은 대화를 전제로 해야 하는가, 정당한 ‘연대’와부당한 ‘패거리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등을 따져보며 글쓰기에 대한 두 사람의 입장 차이를 명확히 드러내고있다. 권성우씨의 답변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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