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떠들면 뭐해. 후세가 게으르고 정부가 성의를 보이지 않은 탓에 역사에 묻힌 독립투사가 수 천이야.”올해로 꼬박 42년째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찾아주는 외길을 걸어온 이명호(李明浩ㆍ73ㆍ경기 광명시)씨.
그의 직업을 굳이 말하자면 잊혀진 독립운동가 발굴 대행업. 선친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은 후손이 찾아와 사실 여부를 물으면 일제시대 판결문과 항일운동사료 및 관련 기사 등 3,000여권의 서적을 홀로 ‘항해’하며관련 자료를 찾아주는 것이다.
그가 찾아준 항일투사만 500여명. 이 중 100여명은 ‘애국장’ 등 국가 훈장까지 받았다.
“김원봉(金元鳳) 열사와 함께 의열단을 창단했던 서상락(徐相洛)이란 분이 있는데 내가 자료를 찾아줘 1990년에 훈장을 받았지.”
이씨의 ‘항일운동 인물사’는 끝이 없다. “오래 전에 원주대 화학과 교수하던 분도 10년 동안 선친의 기록을 못 찾다 내가 신문기사를 뒤져 선친이 사회주의 운동하던 정규선(鄭圭璿)씨라는 걸 알게 됐지.”
선친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말만듣고 최근 이씨를 찾은 권대송(50)씨도 선친 권오상(權五尙)씨가 6ㆍ10만세운동에 참여한 대표적인 사회주의 독립 운동가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이 같은 일이 알려지면서 국회도서관 직원들도 관련 자료를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독립운동가 유족들을 보면 어김없이 이씨를 소개해주곤 한다.
“일제하에서 이 땅의 독립을 위해 이름 없이 죽어간 분들의 발자취나 더듬어보고 싶었어.” 돈도 명예도 뒤따르지 않은 일을 반세기 가까이 하게 된 이유는 그저 소박할 뿐이었다.
한국 전쟁 직후 군 복무를마치고 번역 일을 하던 중 일본어로 쓰인 자료를 통해 조국 광복에 몸 바친 무명의 독립투사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는 항일운동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그는 ‘독립운동 자료 수집’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다.
귀중한 자료가 나왔다는 소리만 들으면 한달음에 내달렸고 책값이 없을 땐 도서관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통째로 복사했다.
그는 관련 자료를 받은 독립운동가 유족들이 간혹 보내주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유일한 벌이로 삼고 있지만 이마저도 전부 자료 구입에 들어가 생계마저 빠듯하다. 그는 “한평생을책더미에만 묻혀 살았는데 가족들이라고 불만이 없겠어”라며 가족 얘기를 접었다.
그는 자신이 ‘이름을 찾아준’ 항일 운동가의 일생과 40여년 동안 작업 일지를 책으로 펴내는 게 남은 소망이라며 넋두리처럼 말했다. “아직도 세상에 알려야할 독립투사가 많은데 자꾸 나이만 들어가니….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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