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언제 또 상봉이 이루어지는 겁니까.”역사적인 6ㆍ15남북 정상회담에이어 지난해 8월15일 감격적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져 한반도를 울음바다로 만든 지 벌써 1년.
하지만 올 2월 3차 상봉 이후 남북 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덩달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회담마저 끊겨 ‘이제나 저제나’하며 기다리던 미 상봉 이산가족들의 마음은 검게 타 들어 가고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무게에 눌린 이산 1세대 60여 만명은 북에 두고 온 부모형제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이대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것이 아니냐며 초조한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1985년 이후 15년 만에 이루어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해 8월15일 첫 상봉이후 올 2월16일3차 상봉까지 3차례 열린 뒤 남북상황이 교착되면서 중단됐고 남한의 상봉신청자 12만 여명 중 불과 300건 3,600명만 북한의 가족들을 서울과평양에서 만났다.
‘1ㆍ4후퇴’ 당시 16세 나이로 가족과 생이별을 한 경유진(66ㆍ서울 성북구 정릉4동)씨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최근 북에 있는 누나와 형이 꿈속에 나타나 마음이 아팠다”며“정말 꼭 한번만이라도 형제들을 만날 수는 없는지…”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지난 50년간 운전과 화원일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온 경씨는“올 초 3차 상봉 뒤 정부로부터 상봉과 관련된 아무 말이 없어 불안하기만 하다”며 세월을 원망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 의용군으로끌려간 동생 신철(69)씨를 애타게 찾고 있는 강선웅(70ㆍ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씨도 “동생을 만나진 못하더라도 생사여부 만이라도 확인하고 싶다”며“하루빨리 남북회담을 재개해 쌓이고 쌓인 이산의 한을 풀어줘야 할 것”이라고 울음을 터뜨렸다.
가족상봉을 이룬 이산가족들도 계속적인 만남을 지속하지 못할 바에야 상봉이 이산의 아픔만 더하게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1차 상봉 당시 노환으로 상봉장에 나오지 못해 북한의 아들량한상(70)이 평양으로 돌아가기 직전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꿈 같은 상봉을 했던 김애란(87ㆍ여ㆍ서울 마포구 서교동)씨의 아들 한종(65)씨는“죽은 줄만 알았던 형님의 생존소식에 어머니가 더 이상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없게 됐다”며 “차라리 모르고 지나치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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