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목적을 ‘순수한 전몰자 추모’라고 말하고 있다.하지만 자민당 실력자인 노나카히로무(野中廣務) 전 간사장은 “야스쿠니 신사는 국가ㆍ천황주의의 상징이자 그 중심 제도”라며 “총리는 이런 역사에 대해 좀더 공부해야 한다”고지적하고 있다.
1867년 메이지(明治) 유신을 통해 일본은 260여년에 걸친 바쿠후(幕府)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천황을권좌에 복귀시켰다.
당시 가장 시급한 과제인 근대적 국가건설에는 다양한 상징이 필요했다.
그 일환으로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바쿠후와 싸우다 숨진사람을 호국 영령으로 떠받드는 쇼콘샤(招魂社)가 전국 곳곳에 세웠다.
1869년에 설립, 황실이 납폐한 도쿄(東京) 쇼콘샤는 이런 호국 신사의 으뜸으로 여겨졌다.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자 ‘정한론’(征韓論)의 주창자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메이지 정부에 반기를든 세이난(西南)전쟁이 진압되고 그 2년 후인 1879년 쇼콘샤는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의 ‘야스쿠니’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2차대전에 이르기까지 역대 전쟁의 전몰자 240여만명을 호국의 신으로 합사했다.
‘천황’과 ‘군대’라는 키워드에서 보듯 야스쿠니 신사는 황국사관과 군국주의를 통합한 상징이었다.
2차 대전에 동원된 일본 젊은이들은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전쟁터로 향했다. 전후 연합군사령부(GHQ)는 야스쿠니신사의 청산을 시도했다. 단순한 종교시설로 남느냐, 순수한 전몰자 추도시설로 남느냐는 양자택일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종교시설을 택했다.
그러나 다른전몰자 추도 시설이 만들어지지 못한 결과 독점적 전몰자 추도시설이라는 특수 기능이 부산물로 남았다.
육군ㆍ해군성이 맡았던 합사자 명단 통보는 전후 후생성으로 넘어갔다. BㆍC급 전범합사에 이어 1978년 10월에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됐다.
전몰자가 아닌 이들의 합사는 도쿄(東京)전범재판을‘천황을 위한 전쟁’의 연장으로, 그에 따른 처형을 전사로 보는 일본 정부의 잠재 의식을 드러냈다. 이는 또 야스쿠니 신사를 단순히 과거 군국주의와황국사관의 유적이 아니라 그 망령이 떠도는 현재의 문제로서 남겼다.
야스쿠니 신사는 지금도 과거의 전쟁을 미화하는 우익세력의 연대의 축이자 교육의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전쟁 유물과 공적 등 전시물에서 털끝만큼의 반성도 찾아 볼 수 없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고이즈미 참배'입장
정부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을 기정사실로 바라보면서 대응 방안 마련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의 기본 입장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력 비판한다는 것이다.한 당국자는 "태평양 전쟁이라는 침략전쟁을 일으킨 가해자 A급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총리가 참배한다는 것에 대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즉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시기나 자격에 상관없이 비판적 입장을 명백히 하겠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가 일본사회에서 갖는 영향력을 감안할 때 상당수준의 대응은 불가피하다는게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물론 일부 당국자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한국과 중국을 의식,참배 자격과 시기 드을 적절히 조정할 경우 '현실적으로 '한중의 대응 수준이 낮아질 수 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런 기본 인식에서 나올 정부의 대응은 매우 원론적일 가능성이 높다. 당국자들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일본 군국주의 움직임과 직결된 예민한 사안이기는 해도 역사교과서 왜곡과 같은 사안은 아니다"라며 "교과서 왜곡은 과거사를 정리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천명한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지만,신사 참배가 우리와의 약속을 파기한 형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정부는 정부차원의 한일 교류중단과 같은 현실적 조치 보다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 또는 논평드을 통해 참배의 부당성을 비판할 것으로 보인다.
■참배' 각국 반응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가 다가오면서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은 물론, 미국 등 국제사회의 우려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여러 경로로 참배 계획을 비난해온 중국은 최근 주일 대사관을 통해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일을 16일 이후로 늦출 것을 비공식 요청했다.
중국은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일본 연립3당 간사장에게도어떤 경우든 15일을 피하고, A급 전범이 아닌 일반 전몰자를 위한 고이즈미 총리의 개인적 참배임을 담화 형식으로 밝혀줄 것을 요구했었다.
또후진타오(胡錦濤) 국가 부주석과 쩡칭홍(曾慶紅) 공산당 정치국 후보위원,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 등 고위 관리들은 이 달 초 중국을 방문한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전 자민당 간사장 일행에 “신사 참배를 강행할 경우 양국 우호관계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강력 경고했다.
미국 정부도 신사 참배로 일본과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가 악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조지프 나이 전 미국 국방부 차관보는 12일 아사히(朝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과 한중 관계가 악화하면 미국의 이익에도 영향을 미친다”면서 “고이즈미 총리가 신사 참배를 강행할 경우 일본은 국제적으로 커다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도최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방송 논평을 통해 “신사 참배는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려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참배 계획을 취소할 것을 촉구했다.
해외 언론들도 잇따라 참배 자제를 촉구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9일 사설에서“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역할을 하려면 침략을 인정하고 참회하고 있음을 주변국들에 확신시켜야 한다”며“고이즈미 총리는 신사 참배로 신뢰회복의 기회를 잃어서는 안된다”고 촉구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는 최신호에서 “신사참배는 A급 전범에 대한 추모뿐 아니라 일본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면서“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대신 전범이 아닌 전몰자들을 추모하는 장소를 방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욕 타임스는 12일 "신사 참배와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아픈 과거사에 대한 일본 내 회피 심리에서 비롯됐으며,그 중심에는 아직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천황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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