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형 사립고’가 도입 전부터 ‘귀족학교’ ‘입시명문 학교’ 논란에 휩싸이며 강한 역풍을 맞고 있다.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 7일 이르면 내년 3월부터 자립형 사립고를 시범운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직후,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등 일부 교원ㆍ학부모단체들이 교육부를 항의방문(8일)하는 등 정부의 자립형 사립고 도입방침 즉각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8일에는 유인종(劉仁鍾)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시교육청 차원에서는 자립형 사립고 신청을 받지 않겠다고 딴지를 걸고 나섰다.
반면 한국교총은 “자립형 사립고가 도입되면 공립학교가 질적 수준을 높이려고 경쟁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찬성입장에 서 있다. 일선 고교에서도 빈부에 따라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교육계가 온통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둘러싸고 사분오열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쟁점은 뭔가
반대론의 핵심은 이 학교가 도입될 경우 결국 입시명문고로 변질돼 고교간 격차만 벌려놓고 학생들간의 위화감을 조성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교육부가 자립형 사립고의 설립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당정협의가 여의치 않자, 명확한 법적근거도 없이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편법시행’하고 있으며, 공청회 등 공식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전교조는 잇단 성명을 통해 “각종 특수목적고와 특성화학교가 설립취지에 맞게 운영되기 보다는 입시학교로 전락한 현실에 볼 때, 자립형 사립고도 입시위주의 귀족학교로 변질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동당도 9일 논평을 내고 “가뜩이나 위기상황에 처해있는 공교육을 경제논리에 맡겨버린다면 이제 공교육은 완전히 파탄지경에 직면할 것”이라며 재검토를 촉구했다.
참교육학부모회의 윤지희(尹智熙) 회장은 “자립형 사립고 선발방식에서 국ㆍ영ㆍ수 위주의 지필고사를 금지한다고 하지만, 심층면접이나 경시대회 자격증 등을 전형기준으로 제시할 경우 사교육비를 부채질하는 등 중학교 과정에서부터 입시경쟁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조 이경희(李京喜) 대변인은 "교육부가 중대한 교육정책을 결정하면서 국민의 의견은 물론, 자치단체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들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았다”며 반대의 칼날을 곧추 세웠다.
▽ 추진일정은 문제없나
유인종 서울시교육감이 끝내 반대론을 굽히지 않을 경우 자립형 사립고 전환을 희망하는 학교가 가장 많은 서울지역에서는 사실상 내년부터 도입이 불가능해진다.
자립형 사립고는 현행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상 시ㆍ도교육감의 추천을 받아 지정하는 ‘자율학교’의 한 형태여서 시ㆍ도교육감의 추천을 받지 못하면 지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현행 법규상 시ㆍ도교육감의 추천을 받지 않은 학교는 교육부가 지정여부를 심의할 수가 없다”면서 곤혹스런 표정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립형 사립고로 지정받을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갖춘 학교에 대해 교육청이 신청조차 받지 않을 수 있는 지는 면밀한 법률해석이 필요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와는 별도로 자립형 사립고에 대한 상당수 학부모들의 반대심리도 추진일정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학생 아들을 두고 있는 주부 황모(42ㆍ서울 마포구 성산동)씨는 “교육당국이 위기에 빠져있는 공교육을 살리는 데 매달리지 않고 교육의 빈익빈부익부를 심화하는 학교를 왜 도입하려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립형 사립고에 대한 일부의 거부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안전장치를 도입방안에 최대한 많이 포함시켰다”면서 “내년부터 3년간 시범 운영해본 뒤 본격 도입여부를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자립형 사립고'
자립형 사립고는 고교평준화의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사학 자율성의 지나친 제약, 학교 교육의 획일성 등을 보완하면서 지식기반사회가 요구하는 고교 교육의 다양화, 특성화 및 자율화를 촉진하는 방안의 하나로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는 건학이념이 분명하고 재정이 건실한 사립고 가운데 시도교육청의 심사를 거쳐 10월에 전국적으로 30개교 정도를 선정, 내년부터 시범운영하게 된다. 학생선발은 전국 또는 지역단위로학교별로 선택할 수 있으며 학생의 소질과 적성 등을 반영할 수 있는 자체 기준에 의해 선발하되 국영수 위주의 지필고사는 치를 수 없다.
교원 자격과관련, 교장은 경영능력이 있는 외부인사 참여가 가능하도록 자격증을 의무화하지 않았지만 교감과 교사는 교원자격이 필수다. 특히 교원정원의 3분의1 범위 이내에서 산학겸임교원제도도 허용된다.
교육과정도 상당한 자율성이 보장된다.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56단위 이외에는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교과서도 국민공통과정 과목 이외에는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학급당 학생 수는 30명 이내를권장하고 있다.
재정은 법인전입금 비율이 20% 이상 되어야 하며, 학생등록금은 일반고교의 300% 이내에서 책정키로 해 분기당 100만원선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학생 15% 이상에게 장학금 지급을 의무화했다. 학교헌장의 제정ㆍ공개를 의무화했으며 매년 학교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공표토록 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찬성
1974년 도입된 고교 평준화정책이 과열 입시교육을 개선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력 차가 큰 학생들을 한 교실에서 가르치게 돼 학습지도가 어려운 것은 물론 학생들의 흥미도가 떨어지고, 교육의 수월성 추구에 장애가 되는등 문제점이 적지 않게 드러났다. 사학(私學)은 학생 선발권이 없어 독자성ㆍ자율성이 위축되고 건학이념도 유명무실한 상태다.
평준화의 단점 보완을 위해 그 큰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자립형 사립고를 도입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공ㆍ사학을 같은 틀로 묶는 나라는 없다. 우리 교육제도와 가장 비슷한 일본도 사학은 희망하는 바에 따라 자립과 평준화의 틀을 자유롭게 오갈 수있도록 하고 있다.
사학의 정체성을 찾아주고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이를 통해 경쟁시대ㆍ다변화시대에 걸맞는 다양한 교육실현과 창의적 인재 육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또 학교 선택권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부여된 너무도 당연한 권리다. 선택해야 경쟁이 있고, 경쟁 속에서교육의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사립은 물론 국ㆍ공립에도 미국의 차트스쿨처럼 최대한의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조기유학 열풍과 외화낭비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찬성한다.
/홍익대 교육학과 서정화교수
■반대
평준화에 따른 학력저하, 차별화 되고 다양한 교육에 대한 사회적 욕구, 사학의 존재가치 상실, 교육의경쟁력과 수월성 추구 등이 자립형 사립고 도입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이유들이다.
우선 평준화가 학력저하를 가져왔다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평준화 지역에서 전반적인 학력상승이 있었다는 것이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에서 실증적으로 증명됐다.
불과 수 십 개의 자립형 사립고에서 다른 교육을 시키는 것이 교육문제 전체를 해결하는 대안인지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귀족 입시명문고’로 탈바꿈할 것이 필연적이다. 대학 서열화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재원의 70% 이상을 부담할 학부모들이 어떤 교육을 요구할 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성화고의 실패에서 알 수 있듯 특성화 다양화 차별화 교육이라는 논리도 대입 앞에서는허구일 뿐이다.
소외계층 학생들도 일정 비율 포용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느낄 문화적 소외감과 위화감을 어떻게 감당할것이며, 고입 과외 열풍, 고교 서열화 등 예상되는 부작용은 또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묻고 싶다. 우리 현실에서 자립형 사립고는 ‘귀족 차별사회’로가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상명대 영어교육과 박거용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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