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석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이 시민단체의 정치(선거) 참여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시민단체의 직접적 정치 참여 여부를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내년 6월 열리는 지방선거에 300여명의 독자후보를 내기로 한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몇몇 시민단체들은 “풀뿌리 민주주의실현을 위해 시민단체의 정치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며 이는 세계적인 흐름에도 맞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경실련 등은 “시민단체가 자기후보를낸 상황에서 어떻게 낙천ㆍ낙선운동을 할 수 있겠느냐”며 “국내 현실에서 섣부른 정치 참여는 시민운동의 도덕성과 순수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반대의견을내놓고 있다.
[찬성] 자치는 환경과 매우 밀접, 무분별 개발 막는데 일조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각에서는 시민단체 정치참여 논쟁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 논쟁 속에는 일반 시민들이 그대로접하기에는 몇가지 위험한 함정이 있다. 우선 "시민단체의 정치참여"의 말의 의미가 대단히 모호한 표현임을 지적하고 싶다.
상당수시민들은 시민운동가가 정치인으로 나서 제도권 정치에 들어가거나 시민단체가 정치단체로 변신한다는 것으로만 이해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시민단체가 특정선거에 후보를 내서는 안된다는 논리이다. 시민단체의 순수성,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시킨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렇게 되면 시민단체가선거에 참여하게 된 동기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은 채 피상적인 사실만을 놓고 왈가왈부하게 된다.
환경연합은 1995년, 1998년 지방선거에도 참여하였기때문에 2002년 지방선거에 후보를 내는 것이 처음이 아니다.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당선된 단체장이나 의원들은 지금도 지역 발전과 친환경적인지역 공동체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환경연합은 모든 선거에 참여하거나 중앙정치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바가 없다. 다만 지방자치는 환경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기에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조직의 방침이며 중요한 활동중의 하나이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한다”라는 리우회의 환경 아젠다를 상기한다면왜 환경단체가 지방자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지방자치를 "생활정치"나 "주민자치"라고 말한다. 생활정치의 영역을 구분해 볼 때 쓰레기,상수도, 녹지, 교통 등 환경의 내용이 지방행정의 주요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지방은 개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방의 특수함과 개성을 살리지 못한 상당수의 지방자치단체는 무분별한 개발논리를 앞세워 국토의 환경을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있다. 지역의 환경운동만으로는역부족이고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된다. 환경연합이 특별히 ‘녹색후보’를 통해 녹색지방자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언론을 통해 지방 의원들의 끊임없는 비리와 자질시비를 심심찮게 접한다. 현행 임기 중에 발생한 각종 비리로 구속되거나 조사를 받은기초의원의 경우만 해도 전체 3,500여명 중 215명으로 6%가 넘고 있다.
지방자치는 나라의 근본이며 기초이다. 기본이 바로 서있지 못한다면나라 전체가 건강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느끼는 심각한 상황 인식이다.
이를 위해 환경연합은 기존 정당과의 차별성을 갖고 ‘녹색후보’로 지방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주민자치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 생명, 평화,젊음, 여성, 인권, 사회적 약자,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정책을 기본으로 녹색가치의 중요함을 널리 알려 시민들이 이해하고 동참토록 할 것이다.
/박진섭 환경운동연합 녹색자치위원회 사무국장
[반대] 시민단체는 비판ㆍ감시자
우리 사회에서 시민단체에 의한 시민운동은 민주화 운동과 그 궤를 같이 하여 전개되어 왔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정치적 후진성에 기인한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 비정부조직(NGO)으로서 민주적 시민사회의 형성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여준시민단체의 활동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권력화가 긍정적인 면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일부 시민단체들은 현대적 의미의 시민운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실정치의 직접참여를 통하여 그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물론 시민단체의 현실정치 직접적인 참여를 제한할 수는 없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은 일반결사와 구분하여 정치적 결사에 대하여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그 의미를 잘 분별하여야 한다.
정치적 결사체로서의 정당은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케 하고 결집시키는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정치적 교육을 담당하는 기능도 함께 한다.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는정당제 민주주의로 변천하면서 정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 현실은 그러나 정당제 민주주의란 말이 무색할 만큼 정당정치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운동은 현실정치에 대한감시와 비판으로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견제하면서 제 3의 힘으로서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이런 힘은 부패한 현실 정치의 바깥에서 지켜온 시민운동의 순수성과 도덕성에서 나왔다. 물론 현실정치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현대 시민운동의역사적 전개과정은 시민단체가 국가권력 또는 정치권의 감시자ㆍ비판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시민단체가 현실 정치의 당사자가 된다면 시민단체가 가진 존재가치를 유지할 수 없다. 즉, 정치단체인 것이다.
현실 정치의 당사자가된 상황에서 어떻게 국민적 공감대와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물론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정치가 썩었기 때문에 녹색 ‘인물’들이 정치에 참여하여정치를 보다 ‘맑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정치에직접 개입한 상황에서 시민단체는 더 이상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시민단체의정치 참여가 법의 테두리에서 가능하다고 그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와 평등의 깃발을 올리고 출발한 시민운동은 위로는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아래로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여 사회적ㆍ경제적 정의를 위하여노력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진정한 시민운동의 의미와 시민단체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에 와 있다.
/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
■독일 녹색당도 환경단체서 출발
독일 녹색당은 1979년 브레멘 시의회에서 첫 의석을 얻은 뒤, 1998년 사회민주당과연정을 구성하는 집권 정당으로 성장했다. 모태는 환경운동단체였다. 초기에는 순수한 시민대표 자격으로 시정을 감시해온 환경운동단체들이 점차 제도권정치에 참여해 직접적으로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것이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올해 6월 환경운동연합은 내년 지방선거에 300여명의 녹색후보를 내기로 일찌감치 공표한 뒤 준비작업에 한창이고, 녹색연합, 서울YMCA,녹색교통 등으로 구성된 ‘지방자치 개혁연대’도 내년 지방선거에 직접 참여키로 했다. 바야흐로 한국에서도 ‘녹색당’을 비롯한 시민운동에 모태를 둔 대안적 정당의 출현이 예고되는 셈이다.
논란은 국내 시민운동의 토양이 서구의 녹색운동과는 다른 면모를 지닌다는 것이다.‘녹색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세력화한 녹색당과 달리, 국내시민운동은 ‘이념’보다는 부패한 정치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청렴성’ ‘순수성’ ‘도덕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주장이다. 정당 정치조차 제대로뿌리내리지 못한 국내 정치현실에서 시민단체의 섣부른 정치 개입은 자칫 순수한 시민운동마저 불건전한 ‘정치색’으로변질 되어 기반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하지만 지방자치제가 자리잡아가는 과정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활성화를 위해 시민단체의정치 참여는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도 상당수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방의회에 진출해 지역 정치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정치참여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경실련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튼 시민단체들의 정치참여 논쟁은 결과적으로 시민운동단체 내부에 다양한 분화를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 과정에서 부패한 정치에 대한 감시와 비판으로 함께 보조를 맞춰온 시민운동이 이를 뛰어넘어 ‘도덕적 감시 기능’과 자신의 이념을 실현하는 ‘현실정치운동’으로 새로운 입지를 구축해 나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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