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 달기가 아이 이름짓는 것만큼이나 어려우리라는 것을 짐작 못하는 바 아니다. 외화 제목을 우리말로 음차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은, 고민하느니 근사하게 들리는 외국어로쉽게 가자는 것일 터이다.이럴 때 관사, 정관사를 빼먹는 것은 애교에 가깝다. 의역이 지나쳐 원제목이나 내용과는 거리가 먼 작명을 하거나 출연하지도않는 유명 배우 사진으로 도배한 재킷도 적지 않다.
출시작 중 가장 기이한 영화제목으로 그렉 아라키의 ‘어디에도 없는 영화’(18세ㆍ파워 오브 무비)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원제목이 ‘Nowhere’이니까 아주 엉뚱한 제목짓기가 아니라고 항변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빌려 보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 작명이다.
거기다 시뻘건 바탕에 작은 사진들을어지럽게 깔아놓은 재킷은 길거리 여자처럼 천박해보여 선뜻 집어들기가 뭣하다.
저마다 잘 났다고 원색으로 절규하는 비디오 재킷 디자인이 난무하니,차라리 흑백이나 모노톤 디자인이 더 눈에 띌 것 같은데.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입체 사운드에 어지럽게 편집한 칼라 영화를 보다가, 나직한 대화와클래식한 음악이 깔린 흑백 영화를 대할 때의 신선함과 평안함을 왜 모르는지.
작명이나 재킷 디자인에 자신이없으면 오리지널을 그대로 가져오면 어떨까. 지질, 인쇄가 빼어난 대형 외국 영화 포스터를 모으는 이들이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심미안을 만족시키는아트 포스터가 적지 않다.
만든 이의 마음이 가장 잘 전달되는 원제목과 메인 디자인을 그대로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짧은 시간 내에 성의 없이,선정적으로 만드는 우리말 제목과 재킷 디자인보다 상급의 서비스 아닐까. 그럼 카피라이터나 디자이너가 할 일이 없다고?
/비디오칼럼니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