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7월말~8월초에 열리는 UN인권소위원회가 올해는 유난히 썰렁한 분위기이다. 몇 개의 국제회의가 UN 건물에서 동시에 열리는 바람에 인원이 분산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유는보다 근본적인 데 있다.인권소위원회의 저조한 분위기를 만든 정부 대표와 시민단체(NGO0의 불참 현상은 인권소위원회의 기능과 회기가 대폭 축소된작년부터 일어났다.
세계의 인권보호를 위해 건설된 UN에서, 정부 주도의 인권위원회와 개인 전문가로 구성된 인권소위원회는 UN의 핵심기구로서 상호보완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 곳곳의 인권 문제들을 풀어왔다.
그런데 형식상 상위기관인 인권위원회에 의해 인권소위원회 위상 저하 작업이 점차 시도되기시작했던 것이다.
정부들 사이에 순조롭게 이끌리는 사안에 대하여 민간 위원들이 거는 제동은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국가간 체계로부터 독립적인 인권소위원회의기능 축소는 정부 주도 기구로의 힘의 집중을 의미하고, 그것은 곧 UN이 지양하고자 했던 패권주의 국가간 체계의 강화라는 역류(逆流)를 만드는것이다.
이것은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용자 측에서의 노동자 그룹 기능 축소 시도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최근의 세계화 흐름의 한 반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을막아야 할 세계 NGO들이 이 흐름에 합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눈앞의 효과를 위해 인권소위원회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NGO의 시대. 그것은 한 국가 내에서만의 현상이 아니라, 세계사회의 새로운 기류이기도 하다. 경제와 정치 분야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의 격차를 벌이며 진행되는 세계화 물결은 바로 이NGO들이 만들어 내는 이른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에 의해 도전 받고 있다.
세계 NGO들은 상호 연대하여 서로의어려움을 함께 풀어가는 노력을 벌이는 추세다. 대규모 학살이 일어난 코소보와 동티모르의 문제를 위해 세계 시민들이 협력하고있다.
또 국경을 넘어확산되는 환경파괴를 막자고 세계 NGO들이 연대하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세계 NGO의 이율배반이그들의 가장 중요한 활동의 장인 UN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인류 양심의 진보를 상징하는 UN에서 강대국이 주도하는 정부 중심의 회의를 견제할 수있는 소위원회를 살려내는 것은 다름아닌 이들 NGO의 몫인데도 말이다.
국가간 이해를 벗어나서 인권의 가치를지향할 가능성을 인권소위원회가 발전시켜 갈 수 있도록 NGO들이 참여하고 UN기구에 문제 제기하는 성실성을 잃은 채 각자의 사안을 위해 정부 주도 회의로 눈을 돌리는 성급함이, 결국 그들이도전하는 국가간 체계를 강화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국제 장(場)에서 활동하는 그 NGO들이자신의 나라로 돌아와서는 어떻게 활동하고 있을까. 막막하여 길을 잃기 쉬운 국제 사회에서와는 다르게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놓치지는 않겠지만,혹시 목표를 빨리 달성하려는데 만 급급해 궁극적 도달점을 보는 시야가 흐려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풀뿌리에 기반을 두고 한사람 한사람의 의식을 변화시킴으로서 새로운 사회를만들어가야 하는 NGO들이, 정부의 여러 사안에 직접적으로 부딪치며 내실을 잃고 결국 시민사회의 중심을 공허하게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또이미 전문화되어 버린 사회에서 미처 준비되지 않은 성급함이 시민사회의 행로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계사회에서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있는 세계 NGO들의 이율배반을 바라보며 우리사회에서 크게 부상하기 시작한 NGO에 대해 기우(杞憂)를 가져본다.
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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