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네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어 “왜”라고 절규하는 정현(김주현)에게 연쇄살인마 M(박중훈)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영화에서 유일하게 스릴러를 고집하고 있는감독 김성홍의 새 영화 ‘세이 예스’의 공포는 바로 그 ‘그냥’에있다. 그냥 어느 날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 의해 아무런 이유없이 내 삶이 무참히 부서질 수도 있다.
‘세이 예스’는 감독의 전작인‘손톱’이나 ‘올가미’보다 심리적 공포를 확장시켰다. 그것은 피의 양이나칼질의 세기가 아니다.
나보다 나은 친구, 내 아들의 사랑을 빼앗아간 며느리라는 구체적 대상이 아닌 불특정 다수에 대한 가해, 그 ‘다수’에‘내’가 포함될 수 있다는 가정보다 더 무섭고 불안한 ‘공포’가 있을까.
번역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사는 정현과 윤희(추상미) 부부에게 그 공포는 아주우연히 찾아왔다. 더구나 행복이 막 시작할 무렵에 찾아와 더욱 애처롭다.
결혼 일주년을 앞두고 작가인 정현의 작품이 드디어 출판에 성공하자 ‘그행복을 즐기기 위해’ 그리고 ‘평생 못 잊을 추억’을 만들기 위해새로 산 승용차로 여행을 떠나는 두 사람.
정현은 아내를 위해 사랑이 듬뿍 담긴 선물과 사랑의 속삭임을 준비하고,윤희는 그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만약 꼭 그때 휴게소에 들르지 않았다면, 아니면 그 전이나 다음 휴게소로 갔더라도그들의 작고 소중한 행복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휴게소에서 윤희를 기분 나쁘게 노려보는 M. 그 순간 그들은 ‘불특정다수’에서 ‘표적’이 됐다. M이 일부러 차에 부딪혀 동승할 때 이미그들은 ‘올가미’에 걸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잔인하게 목을 죄어오는그런 올가미. 나중에 “어쩌다 이 지경이 됐지”라고 발버둥쳐도소용이 없다.
김성홍 감독의 공포방식은 점층법이다. 너무나 사소해 무시하고 지나치는 작은 사건이끈질기게 따라와 마침내 거대한 화물차처럼 주인공을 향해 질주한다.
심리적 공포는 시각적, 물리적 잔혹이 된다. 공포는 강렬하고 빠른 액션으로 바뀌어끝내 피를 흥건히 쏟아 놓고야 끝이 난다.
잠시의 휴식도 허용치 않는 그의 질주에는 에너지가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이예스’는 살아있는 공포가 되기에는 아쉬운 구석이 있다.
불행을 더 크게 보이려 묘사한 초반 정현과 윤희 부부의 애정 표현이 너무나 관습적이라거나M의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코믹한 이미지 때문에 박중훈이 섬뜩하기 보다는 부자연스러우며 때론 우습기조차 느껴지기 때문도 아니다.
그의 실수는 오히려 자연스런 웃음과 행동 속에서 싸늘한 광기를 발휘하지 못하고 의도적으로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지우려 했다는 데 있다.
공포의핵심만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공포를 위한 주변 상황 설정의 부주의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세이 예스’의 공포는 궁극적으로사랑을 믿지 않는 M과 사랑을 믿는 정현의 선악 대결에 있다. 끔찍한 폭력을 행사하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여자(아내)를 죽여 달라고 부탁해. 진실을 말해”라고 강요하는 M에게서 느끼는 공포.
그 못지않게 극한 상황에서 뿜어내는 정현의 저항에 있다. 단순한 고통의 극대화가 아니라 M이 섬뜩해할 정도로 악에 받친 정현의 저항이야말로 또 하나의 광기와 공포임을 ‘세이 예스’는 알고 있었을까. 17일 개봉.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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