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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사전심의 위헌 이끌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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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사전심의 위헌 이끌어낸…

입력
2001.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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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빌어야 될 크고 작은 수많은 용서들 중에서 하나를 이 자리를 빌어 간곡하게 구하고 싶다. 9년전 이 맘 때 나는 영화법 제12조 위반으로 기소되었다.‘장산곶매’라는 독립영화집단에서 영화를 만들던 나는 참교육을 주제로 한 ‘닫힌 교문을 열며’ 라는 작품을 국가기관의 심의를 받지않고 제작, 상영했다는 죄목을 받았다.

나는 동료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양심수(?)라면 꼭 하는 ‘모두 진술’도 하지 않았으며 재판에 열의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화법 12조, 곧 ‘사전심의’가 사실상의 국가기관의 검열이며 그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상위법인 헌법을 거스른다는 우리측 주장 자체가 이미 앞의 여러 선배들에 의해 간단히 묵살되었으므로 그저 ‘집행유예 몇 년’ 정도 받으면 ‘정리’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로 따지자면 아무런 긴장도, 극적 위기감도 없는 ‘불구속 재판’의 내러티브라고 할까.

그런데 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당연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변호를 요청했고, 나보다 몇 년 나이가 많은 한 젊은 변호사가 선임되었는데 그 분이 너무 열심히 변론에 임하는 것이었다.

모두 알다시피 민변의 수임료라는 것이 변호사 사무실과 법정을 오가는 차비도 되지 않았다. 나는 미안하고 송구스러워 우리의 ‘위헌제청’이 어차피 ‘기각’으로 판명날 터인데 헛 힘을 쓰시지 마시라고 말씀 드린 적도 있는데 그 분은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게으르고 멍청한 나는 속으로 ‘신참 변호사’라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분은 기약 없는 재판에 너무나 열심으로 임했다. 부지런히 증인을 선임하고 날카로운 반대 변론으로 검찰측 증인들을 궁지로 몰아넣기도 했다.

재판이 법정 영화처럼 진행된다 싶더니 마침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당시 재판부가 '위헌제청'을 받아들여 이 사안이 헌법재판소로 이관된 것이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4년이 흐른 1996년 10월 6일, 헌법재판소는 사전심의를 위헌으로 판정함으로써 식민지 시대부터 63년간 우리의 상상력을 목 조른 ‘검열’이 철폐된 것이다. 당연히 나는 무죄가 되었다.

이 결과는 누가 뭐래도 전적으로 그 분의 공로라고 생각한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나는 전화 한 통 달랑 한 것 말고는 그를 찾아 뵙지 못했다. 그만 때를 놓쳐 버린 것이다.

강 헌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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