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신이 강(江)의 신의 딸 이오에게 반했다. 먹구름으로 지상을 덮고 이오를 덮쳤다. 구름을 수상하게 여긴 아내 헤라를 속이기 위해 제우스는 이오를흰 소로 만들었다.소로 변한 이오는 아버지인 강을 만났지만, “내가 당신이 찾는 딸”이라고 말해도 소 울음소리만 나왔다.
이오는 발굽으로 땅에 글씨를 써서 자신이이오라고 겨우 알렸다. 사랑했던 이오가 잡초를 뜯어먹는 것을 불쌍하게 여긴 제우스는 이오의 눈동자를 닮은 꽃을 주변에 피웠다. 서양에서 ‘이오의 눈’이라고 부르는 이 꽃이 바로제비꽃으로도 알려진 ‘바이올렛’이다.
신경숙(38)씨는“이오가 땅바닥에 글씨를 썼던 것이 글쓰기 행위의 근원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지 못하는 갇힌 마음을 세상에 내보내는 방식.신씨의 신작 ‘바이올렛’(문학동네 발행)은 92년작 단편소설 ‘배드민턴 치는 여자’를 모티프로 한 장편소설이다.
신씨는“그때는 시를 쓰듯 단편을 썼지만 이번에는 소설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새 소설 속 여자는 ‘배드민턴…’에서처럼 꽃집에서 일하고,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내 가슴이얼마나 뛰었는지 알아?”라고 툭 한마디 던진 사진기자에게마음을 빼앗긴다.
남자를 향한 욕망을 가슴에 품고 여름을 보냈지만, 다시 만난 사진기자는 여자를 기억하지도 못했다.
여자는 다른 남자에게 성폭행당하고, 포클레인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 흙 속에 몸을 묻었다. 여자는 그러나 9년 전에는 없었던 ‘오산이’라는 이름과 세밀한 과거를 갖게됐다. ‘바이올렛’은 아버지로부터, 또 어머니로부터 차례로 버려진 오산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신씨는마음에 가둬놓았던 깊은 감정을 힘들게 표현했지만 가혹하게 잊혀진 오산이가 “어디서나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폭력은 이토록 잔인하다. 그가 고민 끝에 ‘바이올렛’이라는 제목을 붙인 한 가지 이유다. 바이올렛은 남자가 오산이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사진 찍은 꽃이고 ‘이오의 눈동자’라는 그리스 신화가 얽혀있는 한편, 폭력을 의미하는 ‘바이올런스(violence)’와 발음이 닮은 단어이기도 하다.
폭력 아래서 말하지 못하는 여자를 세상에 내보내기위해 신경숙씨는 글을 썼다. 평론가 신수정씨는 신씨의 글쓰기에 대해 “우리는그녀로 인해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 자체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하나의 답변”이라고 설명한다.
작가는작품을 쓰면서 주인공과 같은 심정을 겪는다고 했다. “오해많은 세상에 여자를 내보내려하니 미안해 죽겠다.
제대로 맛있는 것도 먹이지 못했고, 좋은 옷도 입히지 못했으며, 종내는 꿈과 욕망조차 바스라지게했으니 이 여자의 어미가 되는 듯 마음이 쓰리다.
” 그러나이제는 헤어져야 할 때라고 한다. “잘 헤어지고 새 작품을 준비해야할 것”이라며 신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