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크렘린 앞마당인‘붉은 광장’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건물 옥상과 타워 곳곳에 얼룩무늬를 입은 저격병들이 내ㆍ외신 기자들과 관광객들을 향해 총을 겨눴고,경찰은 “물러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잠시 후 텅 빈 광장에 검은 색 차량이 일렬로 들어섰고 회색 인민복 차림의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모습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레닌의 묘에 헌화했다.
프랑스 사진기자는 “10년만에 보는 기묘한 모습”이라고 비아냥거렸고, 바리케이트를 지키던 경찰도 머쓱한 듯 “김정일씨가 잠시 광장을 전세냈습니다”라며 양해를 구했다.
김 위원장의 모스크바행차는 러시아인들에게 조차 ‘비정상적인 실패작’으로 각인되는 분위기다.
20일이 넘는 긴 일정도 그렇지만, 그가 보여준 철저한 비밀주의 때문에“스탈린 시대가 연상된다” “촌극이다”라는 게 대체적 반응이다.
“언론 노출을 꺼리는 여행이라면 뭐 하러 왔는지 모르겠다”는 등 현지 언론들도불만 섞인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한 모스크바 시민은 “김위원장이 러시아가 아니라 구 소련에 온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90년 보수파 쿠데타를 주도했던 드미트리 야조프 전 국방장관이 영접을 나간 점, 김 위원장이 구 소련 지도자들이 애용했던 리무진 ‘질’을 타고 모스크바 중심가를 질주한 것등을 보면 10여년 전 소련의 모습을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때 서방언론이 자신을 ‘은둔의 지도자’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모스크바 행보는 이 별명을 털어내는 게 아니라 재확인하고있다.
이동준 정치부 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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