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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냄비근성'의 신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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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면서] '냄비근성'의 신뢰성

입력
2001.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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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옛날에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자지도 먹지도 못하여 안절부절못한 그 사람이 몇 천년 동안 중국의 우스개거리가 됐지만 사실 중국인들은 ‘보이지 않는’ 위기 때문에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중국 사람에 비하면 한국 사람이 겁이 없는 편이다. 중국 사람이항상 ‘就 萬一’(만 중에 하나의 예외를 두려워한다)이라며 결정 내릴 때 망설이는데 한국인은 ‘하면 된다’면서 일을 힘차게 시작을 한다.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인의 이런 낙천적인 성격, 그리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곧바로실행에 옮기는 것을 많이 목격하고 감탄했다. 작년 여름이었다.

북한과 남한의 지도자가 평양에서 처음 만났다는 뉴스를 본 뒤 기말 시험을 끝내고중국에 2주일 동안 다녀왔다.

이 때 한국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벌써 기차를 타고 북한을 경유해서 유럽으로 여행을 가는 얘기를 하고있었고 정부와기업은 철도를 통한 유럽 시장의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나는 한국인의 이러한 박력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인이 자신감을 갖는 것은 좋지만 어려움을 대비하는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중국인은 한국인을 냄비나 주전자에비유한다. 냄비와 주전자의 공통점은 빨리 뜨거워지지만 빨리 식는것이다.

한국인은 실패 가능성을 심각하게 분석하지 않는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는 “괜찮겠지”라며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한국 친구에게 “내복을 안 입으면나이 들어서 관절이 아프지 않겠냐”고 물으면 “젊은 사람이 왜 할머니 같은 소리를 하나. 걱정도 팔자다”라고 응수한다.

다음 주 화요일에 과제물을제출해야 하는데도 주말에는 걱정 없이 놀고 있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또 빨라진다. 밤 세워 숙제를 하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다.

‘주전자’성격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맞았고 또한 한국이 빨리 위기를극복한 것 같기도 하다. 일장일단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계획을 끝까지 진행시키지 못하고 자꾸 계획을 변경하면서 외국인의 신뢰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것이다.

어려움에 대한 사전 예측이나 분석이 충분하지 못해 문제가 생기면 대응책이 없고 계획은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된다.

처음 한국에 올 때 대사관 직원에게서 이런 충고를 들었다. “한국 사람이 뭘 하겠다고 거창하게 얘기할 때 너무 기대하지 마라. 갈수록 작아질 것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당장 계획을 세우고 한동안 얘기하고 흥분하는 한국인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이 닥쳐오면 현실과 타협하느라 계획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심지어 변명 한 마디 없이 계획을 무산시켜 버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런 습성 때문에 실망하거나 심지어 속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고 지금도 갑자기 달라지는 계획 때문에 힘들어 할 때가 많다.

약속시간에 가면 차가 막혀서 늦게 도착한다는 전화를 항상 받는다. 다음 주 언제 모이자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미리부터 시간을 비울 필요가없다.

학기가 끝날 때 신청한 과목을 다음 학기에 꼭 들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개학 때가 되면 사정이 생겨서 바꿨다고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너무 변덕스럽다 보니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마음은 더욱 바빠진다.

얼마 전 한국 방문단을 많이 안내했던 중국인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 “한국방문단이 온다고 해서 미리 호텔을 예약하면 안된다.

계획을 항상 바꾸기 때문에 비행기에 탔다는 전화를 받아야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바깥에서도 한국인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인이 이렇게 신뢰를 잃어가면 나중에 곤란해질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다.

왕샤오링(중국인) 경희대사회학과 석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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