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금융이 제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외환 위기 이후 거세지는 은행의 대형화, 수익성 논리에 서민 금융은 자취를 감췄다. 저금리체제가 장기화하고 있지만 혜택은 소수의 우량 기업 및 신용우량자에게 집중되고 있고, 서민 지원을 위한 정책 금융은 실효성을 상실했다.
■ 설 자리 잃어가는 서민금융
“소매금융에 주력하기 위해 국민, 주택 두 은행의 서민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데주력하겠다.”
향후 국내 은행의 흐름을 주도하게 될 국민ㆍ주택 합병은행의 최고경영자(CEO)후보로 선출된 김정태(金正泰) 주택은행장은 최근 기업설명회(IR)에서 합병은행의 비전을 이렇게 설명했다.
서민 고객 중심에서 우량 개인 및 중소기업 중심으로 전략적 무게 이동을 하겠다는 얘기다.
서민금융기관을 자처했던 평화은행, 신협, 새마을금고, 상호신용금고, 지방은행 등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대규모 부실을 떠안아 존립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시장에서도 “수익성을 내지 못하는 금융기관은 설립 취지를 떠나 퇴출 되는것이 마땅하다”는 논리가 자리잡았다.
한 시중은행장은 “금융기관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내세울 수 밖에 없다”며 “서민에 대한 금융지원은 은행 이익을 갉아먹는 만큼 생색내기 수준에 그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는 서민금융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급속히 확산된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 등에 의해 대출금리 하락 혜택은 직업, 경제 여건 등이 우수한 소수의 고객에게 집중,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시키고 있다.
정책금융도 저금리 기조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높다. 평화은행의 근로자 주택구입 및 전세자금 대출 금리는 연 7.0%로 최근 큰 폭으로 떨어진 시중 대출금리(연7~10%)와 큰 차이가 없는 상태다.
■ 서민금융 지원 필요성 논란
금융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서민금융 위축 현상을 놓고 시각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정책금융 등 인위적인 장치를 통한 지원은 시장을 왜곡할 수 있는 만큼어쩔 수 없다는 것이 일각의 주장.
삼성경제연구소 유용주(劉容周) 선임연구원은 “과거처럼 정책금융을 통해 서민들을 지원하게 되면 공정 경쟁을 해치고 자금시장을 왜곡하게 될 것“이라며 “금융기관들의 자율 경쟁을 통해 틈새시장으로서 서민금융이 자리를 잡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도기적 상황에서 서민금융을 자율 경쟁 체제에 내맡겨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금융연구원 고성수(高晟洙) 연구위원은 “서민금융은 국가 인프라 구축과 다름 없는 것으로 정책적인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며 “은행들의 수익성 경쟁이 치열해 질수록 서민들의 소외 현상은 점점 더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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