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늘 노부부가 앉아있는모습을 볼 수 있다.전남 영암에서 지난해 12월4일 상경한 배채진(裵彩珍ㆍ60)씨부부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선친이 경계근무 중 경찰관의 오인사격으로 실명한 뒤 비관 자살했다”며 명예회복과 20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8개월째 농성 중이다.
검찰 일과시간 내내 정문 앞을 지키다 저녁이면 동대문구 회기동에 얻어놓은 옥탑방에서 잠을 잔 후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대검청사 정문 앞으로 ‘출근’한다. 지난 겨울 허리춤까지 눈이 쌓이고, 최근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질 때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일반 직원이나 민원인들에게는 한마디 하소연도 하지않고 오로지 검찰총장만을 상대로 ‘읍소와 탄원, 항의구호’를 반복한다는 점. 출ㆍ퇴근시간 총장의 관용차가 보이기만 하면 태극기와 선친의 참전용사 증서및 요구사항이 담긴 게시판을 들고 달려간다.
이들 부부는 “전직 대통령들까지 구속한 검찰이 못하는 일이 어디있느냐. 손해배상 시효가 지났다면 법이라도 만들어달라”는 논리ㆍ법리적 ‘설득’도 병행하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검찰도 2월부터 대책반을 구성, 해결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뾰족한 답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실명사고의 진상을 파악해보려 했지만 당사자들이 모두 작고하거나 행방불명돼 증거가 부족했고 손해배상은 민사문제라 검찰이 직접 손을 쓸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대검 주변을 지나는 시민들이 검찰이 이부부를 직접 핍박한 것으로 오해하기 일쑤”라며 “딱한 민원인을 함부로 내쫓을 수도 없고 그냥 두자니 ‘법대로 엄정하게 처리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검찰의 복무지침과도 배치돼 이래저래 고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손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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