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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사커] 훌리건과 한국 서포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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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사커] 훌리건과 한국 서포터스

입력
2001.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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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서 과격한 팬을 지칭하는 훌리건(hooligan)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훌리건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98년 여름 영국 런던 경시청 보고서이다. 또 훌리건이라는 성을 가진 아일랜드 가족에서 유래됐다거나, 훌리스 갱(Hooley’s Gang)의 오음(誤音)이라는 이야기도 있다.1899년 클라렌스 룩이란 작가는 ‘훌리건 나이트’라는 책에서 좀도둑 패트릭 훌리건으로부터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설이야 어떻든 훌리건은 이제 현대축구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축구악(惡)적 존재-가 되었다.

20세기 초 축구는 안전장치의 허술함에도 관중은 공격성이나 폭력성을 보이지 않았다.현대적 의미의 훌리건의 등장은 1970년대 초 이탈리아 북부지방 명문클럽들의 과격팬들이 조직화되면서부터.

훌리건은 이후 점차 극렬해졌는데 85년 5월29일 브뤼셀의 헤이젤 스타디움서 열린 유벤투스 튜린_리버풀간의 유럽클럽선수권 결승전서 양쪽 서포터스들의 충돌로 39명이 숨지는 최악의 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14명의 영국팬들이 징역 이상의 형을 언도받았다. 유럽 각국은 반훌리건법 제정과 함께 영국 훌리건들을 입국을 금지시켰다.

이를 계기로 축구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회의적인 스포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남의 일로만 여겨졌던 훌리건이 한국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어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지난 달 28일 수원에선 대전 서포터스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수원 서포터스들과 일전(?)을 벌여 차량 두 대가 파손되는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경미하긴 했지만 이 사건은 한국축구 최초의 훌리건 사고로 기록될 만 하다. 양쪽 서포터스들을 중재, 화해시킨 프로연맹은 앞으로 조직적인 훌리건들이 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국내에 서포터스의 등장은 97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처음으로 홈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열리면서부터. 서포터스는 4년만에 비약적인 발전을 했으나 훌리건의 등장은 너무 이른 감이 있다. 응원은 축구의 묘미를 한 차원 높여주는 요인이지만 훌리건은 평화와 정직과 아름다움을 표상하는 축구를 비인간적으로 격하시킨다.

폭력이 배제된 순수와 열정, 그것이 진정한 서포터스의 매너가 아닐까.

유승근기자

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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