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인천구장. ‘딱’하는파열음과 함께 타구는 순식간에 내야를 벗어났다.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꿰뚫는 깨끗한 좌전안타였다. 이종범이1997년 10월25일 LG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 이후 3년 10개월만에 국내 팬들 앞에 다시 섰다.유니폼에는 해태 대신 기아가 선명하게 찍혀있었고, 타순도 1번 아닌 3번, 수비도 유격수 대신 3루를 떠맡았다. 하지만 천재성이나 카리스마는 변함없었다. 1회 SK선발 김원형과 풀카운트까지가는 접전 끝에 6구째 변화구를 받아 쳐 안타를 뽑아낸 것.
관중들이 ‘뛰어’라는함성으로 도루를 독려했지만 4번 산토스가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나 기회를 놓쳤다. 3회 1사 1루상황에선 잘 맞은타구가 병살타로 연결돼 아쉬운 탄성이 쏟아졌다. 6, 8회에 안타를 보태지 못해 4타수 1안타로 평범하게 마쳤지만 관중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독려했다.
전매특허였던 빠른 송구도 돋보였다. 5회 첫 타자 SK 이호준의 타구를 원바운드로걷어낸 후 강한 어깨를 이용, 1루로 뿌렸다. 6회 1사후 조원우, 2사후 채종범의 까다로운 땅볼도 매끄럽게 처리, 박수갈채를 받았다.
“프로데뷔전과 4년전 한국시리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습관처럼 말하던이종범. 이제 이날 경기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잔뜩 긴장한 표정의 이종범은 경기전3루쪽 관중석을 향해 깍듯이 고개를 숙여 고국 팬들에게 예의를 갖췄다.
팬들은 기립박수로 복귀를 축복했다. “일본에좋은 성적을 거두지도 못했는데 너무 뜨겁게 맞아줘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말한 그는 그라운드에서 그 빚을 갚았다.
이종범은 경기후 “수비력은 어느 정도만족한다. 앞으로 4~5경기를 더하면 예전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말했다.
▼이종범, 바람을 일으키다
전날 내린 폭우로 24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던 아쉬움 탓일까. 경기 시작후1시간이 채 흐르지 않았는 데도 인천구장 매표 창구는 문을 내렸다. 개막전 이후 처음으로 1만1,465표가 동이 났기 때문이다.
1,000여명은표를 구하지 못해 발걸음을 돌렸다. SK 홈 평균관중(2,489명)에 비해 무려 4배가 많은 수치다. 기아자동차, INI스틸(구 인천제철) 등기아 관련사에서 4,100여장을 예매했고, SK도 축제분위기에 동참하기 위해 3,000여장을 거들었다.
취재진 50여명도 시종일관 이종범을 따라다녔고경인방송, SBS스포츠 등 방송사는 대전경기 중계일정을 취소하고 인천경기로 바꿔 ‘이종범 신드롬’에동참했다.
▼채종범 ‘나도 종범이다’
이종범과 한자 이름까지 똑같은 SK 채종범. 1회 1사후 2루타로 출루한 후4번 에레라의 적시타로 홈을 밟더니 2회 2번째 타석서 적시타를 터뜨렸다. 4회 1사 1루서 99년 12월 삼성으로 이적한 후 지난 달 친정으로복귀한 이강철의 2구를 걷어올려 투런포를 터뜨렸다.
이 한방으로 SK는 6_1로 달아나 사실상 승부를 마감했다. 이날 4타수 3안타 3타점을 올린채종범은 3루타가 빠져 아쉽게 사이클링히트를 놓쳤다. 대신 포스트시즌 같은 분위기의 기아 데뷔전을 활용, ‘종범의힘’을 과시했다.
정원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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