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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 힌 '애국투사'의 슬�Z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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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 힌 '애국투사'의 슬�Z 초상

입력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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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의 미국 방문 문제를 놓고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과 황씨 사이에 오간 공개 서한(본지 7월16일자 7면,7월 24일자 7면)은 우리 사회의 각 세력이 한반도의 평화 구축이라는 사업에서 서로 현격히 다른 손익계산서를 작성하고 있음을 새삼 일깨웠다. 이 왕복 서한은 거기에 더해,분단시대의 북과남에서 연이어 완고한 체제지식인으로 살아온 한 개인의 내면 풍경을 날것으로 드러내 보였다. 기자는 이 두번째 효과에 더 관심이 있다.기자는 이씨가 그 예의바른 서신에서 찬찬히 열거한 논거들에 공감하면서,황씨가 자신의 방미계획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그러나 다른 한편 ,황씨가 굳이 미국에 가야겠다고 고집한다면,정부는 그의 신변안전보장 문제를 확실히 한 뒤 방미에 동의하는 것이 슬기롭다고 생각한다. 지금 황씨의 방미를 두고 일고 있는 허깨비 같은 인권논쟁의 소란은 그가 미국에 가서 만들어낼 한바탕의 에피소드보다도 정부에 더 큰 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황씨의 글이 지닌 희극성은 지적해야겠다. 우선 그는 그 글에서 '조국통일 위업에 헌신하겠다'는 '결의'를 다시 다지고 있는데,하루빨리 그 '결의'를 잊는 것이 '애국투사'로서의 도리인 것 같다. 통일의 전제 조건이면서 오히려 통일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평화다. 그가 남한에 온 이래 거친 말로 구사해온 반평화 선동은 궁극적으로는 통일의 걸림돌이기도 하다.

황씨는 또 "국익을 위해서 개인의 인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은 독재의 논리가 아닌가"고 묻는다. 옳다. 그런데 지금 황씨의 인권은 침해당하고 있는가?본인도 그렇다고 하고 그렇게 주장하는 정파도 있으니,그렇다고 치자.그래도 발화자들의 정체성 문제는 남는다.지금 황씨의 인권을 거론하는 이들은 직업적인 극우 선동가에서부터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에 이르기까지 "국익을 위해서 개인의 인권을 희생시키는 것의 전문가들이다. 그 '국익'이 뭔지는 둘째치고라도 말이다.

더 중요한 것은 황씨 자신의 정체성이다. 그는 삶의 대부분을 "국익을 위해서 개인의 인권을 희생시켜"온 체제의 핵심 인물로 살았다. 그리고 그 체제를 떠나 "조국의 품에 안긴 한국인"이 된 뒤에도 자신의 취향을 버리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여전히 '국익'을 위해서 매섭게 선동하고 공격한다. 그 선동의 대상이 남한의 수구세력으로 바뀌고 그 공격의 대상이 자신에게 오래도록 안락한 생활을 베푼 북한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애국 투사'를 자임하는 이 주체철학의 창시자가 "동맹국 국회의원들의 호의를 믿는가 믿지 않는가 하는 것은 한미 동맹관계와 관련된 원칙의 문제이다"라고 쓰면서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하다.

황씨는 남한에 '천재들'이 너무 많다며 그들의 '젖비린내'를 조롱한다.기자느 이 대목에서,황씨가 창시했다는 주체철학이라는 것이 남한 사회의 대학생 리포트만도 못하다는 시각도 있음을 그에게 일깨우고 싶다. 진중권씨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책의 한 장에서 경쾌하게 시도한 황장엽 텍스트의 해부는 그 소문난 철학 사상의 속살이 얼마나 거친지를 보여준다.

기자는 외람되게도 대사상가 황씨에게 또 한 사람의 저자를 추천하고 싶다. 간첩 사건으로 복역하고 나온 정수일이라는 이다. 그가 요즘 '신동아'에 연재하고 잇는 '이슬람 문명 산책'이라는 글은 학자란,사회주의자란,애국자란 어때야 하는지를 일깨운다. 사실 황씨의 오해와는 달리 한국 사회의 문제는 자칭 천재가 너무 많은데 있는 것이 아니라,황씨 같은 자칭 '애국투사'가 너무 많은 데 있다. 사리를 분별하는데 꼭 애국심 같이 거창한 덕목이 필요한 게 아니다.그저 소박한 시민적 양식이면 족하다.

고종석 편집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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