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 자기성찰 없는 법치주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자기성찰 없는 법치주의

입력
2001.08.02 00:00
0 0

사법부가 ‘법치주의의 위기‘를 걱정하고 나섰다.얼마 전 있었던대한변협 모임에서 최종영대법원장은 축사를 통해 ‘우리사회에서는 아직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정당한 법 집행을방해하거나 확정되지도 않은재판을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비판하면서,결과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등 법치주의와는 거리가 먼 행태가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이어윤영철 헌법재판소장도 ‘거의 모든분야에서 가치정립과 방법선택의 이견이 노정되면서 마치만인 대 만인의투쟁과 같은 혼란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장과헌법재판소장의 이러한 발언이정확히 무엇을 겨냥한것인지는 알 수가없다. 그러나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때 일반 국민들의 일반적인 법 경시풍조만을 이야기한 것은아닌 것 같다.

다분히,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을포함한 시민사회단체들의 ‘불법적’ 활동이나 15세가출소녀 성매매 사건무죄판결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사법부 비판을 지적한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은아예 그렇다고 못을박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의행위를 무조건 옹호할생각은 없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법을 어기는 것은잘못된 일이고, 법원 앞에서시위를 하고 담당판사를 공개 비판하는 것도잘했다고 할 수는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것을 이들의잘못으로만 돌리는 것도어딘가 이상하다. 문제의 상당부분은 오히려 사법부의 지나치게 보수적인 태도와 잘못된사회인식에 있기 때문이다.

총선연대의낙천·낙선운동만 해도 그렇다. 이를금지하고 있는 현행선거법 제87조는 여·야정당의 정치적 담합에의해 만들어진 것으로선거과정에 있어서 정당의독점 내지는 준독점을 허용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독소조항이며, 우리나라 선거를이 모양 이꼴로 만드는 결정적원인중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시민사회단체가 낸두 차례의 헌법소원에서 계속‘합헌’을 선언했다.

선거가 선거로서의 구실을 못하고있다는 사실과, 이로 인해정치부패가 만연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유민주주의와 국가경쟁력의 기반이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제대로 인식하였다면 절대로내릴 수 없는결정이었다.

총선연대가헌법재판소의 이러한 결정에도 불구하고 낙천ㆍ낙선운동에 나섰던것은 상황이 그만큼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정당과 국회의원들의 담합으로 만들어진 잘못된법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지만 헌법재판소마저 잘못된것이 없다고 하니시민단체로서는 ‘순교’라도 하는도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출소녀성매매 사건 또한마찬가지이다. 민주당 조순형의원의 말대로 잠자리도 없는 딱한 처지를악용해 성관계를 맺은것은 일반적인 성매매보다 더 악질적인 일이다.

이에대해 무죄를 선고한것을 법원의 판단이라 무조건 존중하여야 하는가? 또다소 과격한 비판을했다고 해서 이를법치주의를 위협하는 것으로보아야 하는가?

우리국민은 아직 사법부를 신뢰한다. 때로는 신뢰가 지나쳐문제가 있어도 문제로보지 못한다. 전관예우 관행과힘있는 사람들에 대한후한 판결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일을 적지 않게보면서도 웬만하면 자신의상식이 잘못된 것으로생각한다. ‘벌거벗은 임금님’을보고도 애써 자신의죄 때문에 ‘옷’을보지 못한다고 믿는것과 같다.

이제우리사회 일각에서 ‘임금님의 옷’에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아직은 의문을 던지는자도, 이를 듣고있는 자도 반신반의이다.

이들의 믿음이 가라앉기 전에사법부는 옷을 제대로입어야 한다. 스스로 잘못된상식과 역사관을 지니고있지는 않은지, 잘못된 정치경제 질서에 대해 얼마나바른 판단을 하고있는지,묻고 또 물어야한다. 이러한 자기비판적 물음이야말로 법치주의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김병준 국민대행정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