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8월2일 베트남의 동쪽 통킹만(바크보만)에서 북베트남과 미국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다. 이것이 미국의 북베트남 폭격과 확전으로 이어진 통킹만 사건이다.통킹만은 중국 남해안과 레이저우(雷州)반도ㆍ하이난섬(海南島) 및 베트남 북부 해안으로 둘러싸인 남중국해의 만이다.
통킹만 사건의 실상은 그 당시에도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지금도 말끔히 해명되지않았다.
처음에 미국 국방부는 미국의 구축함 매독스호와 터너조이호가 각각 1964년 8월2일과 4일에 통킹만 공해상에서 초계 중에 북베트남의 어뢰정 3척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북베트남 외교부는 매독스호가 북베트남 영해 안에서 북베트남 초계정을 먼저 공격했다고 반박했다.
뒷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이 폭로한 미국 국방부의 베트남 전쟁비밀보고서(펜타곤페이퍼)에 따르면, 이미 1964년 2월1일부터 사이공(현 호치민)의 미군 사령부의 지휘 아래 북베트남에 대한 광범위한 비밀작전(A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작전은 정보 수집, 파괴활동, 연안시설 폭격으로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북베트남 경제의 기초를허물어뜨리는 ‘선전포고 없는 전쟁’의 밑그림이었다.
요컨대 이 보고서는 남베트남에서 정치적ㆍ군사적상황이 여의치 않게 전개되자 전쟁을 베트남 전역으로 확대하기 위해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도발했다는 북베트남측의 주장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셈이다.
8월5일부터 미국은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에 나섰는데, 이 북폭은 하노이, 하이퐁등 북베트남의 심장부를 겨냥하고 있었다. 이후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단계적으로 확대했다.
미국은 그 나라의 역사상 유일한 패배를 기록할 길고 치욕스러운전쟁으로 점점 더 깊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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